
윤지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다음 주에 100% 살아올 것을 확신하시면 두 손 들고 만세. 만약에 만약에 살아오지 아니하면 이건 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전광훈 목사 3월 23일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
“또 계엄이 시작될 수 있는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헌재가 선고기일을 미루는 것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중략) 심리적 내전을 넘어 물리적 내전이 예고되는 상황이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3월 24일 최고위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측과 반대 측을 각각 대표하는 인물인 이 대표와 전 목사가 모두 ‘내전(內戰)’을 거론했다. 일종의 정치적 수사에 그쳤던 ‘내전’ 이란 용어가 최근에는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할 만큼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탄핵 국면에서 양극단의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조장하면서 실체적 폭력의 위험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폭력 사태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서 <폭력론>에서 “폭력의 반대말은 권력”이라고 했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강고한 권력이 없는 사회에선 폭력적 수단이 횡행하게 된다는 의미다. 지금 한국사회가 딱 그렇다. 그렇다면 이러한 ‘내전’ 상황은 압도적 지지를 받는 다음 대통령이 선출되면 좀 나아질까. 지금의 정치는 그런 기대가 헛되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3월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대법원에서 바로잡혀야 한다”고 말했고, 일부 의원은 “정치성향에 맞춰 재판한 것 같다”며 항소심 재판부를 비판했다. 향후 대선이 진행돼도 이 대표를 향한 비난과 사법 불신 조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3월 27일 현재까지도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간에 어느 쪽도 승복하지 않을 것만 같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역사 왜곡이라 폄훼하고, 반북과 반중 그리고 반여성과 반개혁을 외치는 세력과 영원히 공존해야 할지도 모른다. 심리적·물리적 내전의 시대는 이제 디폴트값이 됐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