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레틱>은 꾸준히 공동 각본·연출을 이어가고 있는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감독의 전작보다 훨씬 묵직하고 섬세한 느낌을 준다. 공포뿐 아니라 드라마적 관점에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스튜디오 오르카
제목: 헤레틱(Heretic)
제작연도: 2024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11분
장르: 공포, 미스터리
감독: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출연: 휴 그랜트,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
개봉: 2025년 4월 2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모르몬교 선교사이자 혈기왕성한 청춘인 반스(소피 대처 분)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 분)은 전도하기 위해 외진 숲속에 홀로 있는 리드(휴 그랜트 분)의 집을 방문한다.
서글서글하고 친절한 미스터 리드의 환대에 안심한 두 소녀는 집안으로 발을 들이지만 이내 불길한 기운이 엄습하고 꼼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후로 굳게 신뢰하고 있던 믿음을 잠식당한 채 공포에 내몰린 팩스턴에게 리드는 질문한다. ‘사람인 내가 나비 꿈을 꾸고 있는가? 나비인 내가 사람이 된 꿈을 꾸고 있는가?’
영화 <헤레틱>은 최근 미국 장르영화의 새로운 판도이자 대세로 자리매김한 제작사 A24의 작품이다. A24는 관습을 답습하며 말초적 쾌감을 제공하는 데 급급했던 기존의 공포영화와 구분해 새로운 시선과 철학적 함의, 사회적 문제의식을 내포한 작품들을 뜻하는 소위 ‘하이콘셉트 호러(High-Concept Horror)’, 또는 ‘엘리베이티드 호러(Elevated Horror)’의 대표적 산실로서 주목받고 있다.
이 작품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는 데뷔 당시부터 꾸준히 공동 각본·연출을 이어가고 있는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감독이다. 다르덴 형제, 코엔 형제, 워쇼스키 자매 그리고 사프디 형제처럼 혈연관계로 함께 연출하며 유명한 경우가 보편적이다 보니 이 둘의 꾸준한 협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례적으로 평가받는다.
찰떡궁합 콤비 감독의 진일보한 심리 공포
두 사람은 아이오와대학 재학 당시부터 블루박스 필름스(Bluebox Films)라는 영화사를 공동 설립하고 다수의 단편영화와 TV용 영화 등의 각본·연출을 겸하면서 내공을 키웠다. 그러다 2018년 공개돼 흥행과 비평 면에서 큰 성과를 낸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각본을 통해 존재감을 크게 각인시켰다.
이후 핼러윈데이 놀이시설인 ‘귀신의 집’에 들어갔다가 죽도록 고생하는 젊은이들의 하룻밤을 그린 <헌트>(2019), 6500만 년 전 지구에 불시착한 조종사의 고군분투를 그린 SF 스릴러 <65>(2023) 등을 내놓으며 신뢰를 쌓아갔다.
획기적이고 실험적인 작가적 도전보다는 무난하고 상업적인 장르 영화에 집중하는 와중에도 매번 나름 변화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차기작을 궁금하게 만드는 그들이다.
이번 작품 <헤레틱> 역시 온전히 새로운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 공포영화로서 걸작의 반열에 오른 <디센트>(2005)나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2008) 같은 묵직한 작품들이 성취했던 철학적 질문이나 염세적 세계관은 이 작품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 이번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맹활약 중인 한국의 정정훈 촬영감독이 스태프로 참여해 한국 관객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서게 됐다. 배우와 일치된 감정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풍부하고 중후함을 포착해내는 그의 혜안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중견 배우와 전도유망한 젊은 배우들의 시너지
그래서 감독들의 전작들과 비교해 훨씬 더 묵직하고 섬세하게 세공된 느낌을 던지는 <헤레틱>은 공포영화 팬이 아니더라도 드라마적 관점에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진일보한 느낌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포인트라 할 수 있는 출연 배우들의 면면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일단 작품의 중심을 맡은 리드를 연기한 휴 그랜트야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같은 시대를 초월한 로맨틱 영화의 주인공으로만 기억되는 것 같다는 아쉬움을 드러낸 인터뷰를 접한 감독들은 애초 시나리오 작업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고 전해진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그의 연기를 만날 수 있다.
타이틀 롤을 맡은 두 여배우는 어려서 실제 모르몬교도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에 동화되는 데 수월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선명한 이목구비가 눈길을 끄는 소피 대처는 국내에 2주 앞서 개봉한 독특한 로맨스 스릴러 영화 <컴패니언>에서도 주연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보드게임의 대명사 ‘모노폴리’

/wikipedia.org
영화 속에서 의문의 중년남 리드는 순수한 방문자들을 끊임없이 해괴한 대화로 자극하며 그들의 설익은 신앙을 시험한다. 종교의 나약한 순수성을 설득하면서는 다양한 문화 형태 안에서 실재했던 표절의 예를 나열하는데, 보드게임의 대명사로 취급받는 모노폴리(Monopoly·사진)도 그중 하나로 언급한다. 이 게임은 많은 영화 속에서 케이크 형태의 과자인 트윙키(Twinkies), 코카콜라, 나이키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의 하나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모노폴리는 1930년대 초 미국 파커 브라더스사가 시판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초 출시돼 지금까지도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블루마블(Blue Marble)’의 원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모노폴리 역시 한참 전인 1904년에 엘리자베스 매기라는 여성이 특허를 출원한 ‘지주놀이(The Landlord’s Game)’의 또 다른 복제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영화 속에서 언급하고 있다.
마텔과 함께 미국 장난감 회사의 양대 산맥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해즈브로는 1991년 파커 브라더스 사를 인수하면서 모노폴리의 인지도와 가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명소, 명품, 미술, 음악, 게임, 영화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개발되는 에디션들은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외형뿐 아니라 게임 방식에서도 적절한 변화를 더해 수많은 컬렉터를 양산했고, 절판된 몇몇 에디션은 원가의 수십 배에 달하는 호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모노폴리의 이런 변화와 다양성은 가지각색의 형태와 난이도의 보드게임이 수없이 출몰하고, 최첨단 기술이 집대성된 컴퓨터게임 시장이 급성장한 지금도 여전히 보드게임의 대표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일 것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