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무죄가 반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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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이런 것이 디스토피아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시뻘건 불길이 거센 바람을 타고 산등성이를 넘나듭니다. 화염으로 가득 찬 산골 마을에서 노인들은 차를 타고 대피하다, 매몰된 집에서 빠져나오다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습니다. 천년 된 고찰이 주저앉고 국립공원도, 세계문화유산도 위협받았습니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한반도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경북 북동부지역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습니다.

국가적 재난 상황을 두고 온라인에선 음모론도 화마처럼 퍼졌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산불 원인을 놓고 간첩과 중국인 소행이네, 무속을 좋아하는 김건희 여사의 ‘호마의식’이네 하는 얘기가 떠도는 걸 보면 그저 참담합니다.

서울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왕복 6개 차선 중 4개 차선이 무너지며 땅이 지하 20m 아래로 내려앉는 일이 벌어집니다. 몇 달 전에도 가끔 다니는 도로가 푹 꺼져 차 한 대가 통째로 빠진 장면을 보고 식겁했던 기억이 있는데, 잊을 만하면 땅이 무너져내리니 불안해서 어디 다니겠습니까. 더구나 이번 사고로 실종됐다가 17시간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된 사람은 낮에 직장 다니고 퇴근 후 배달일을 부업으로 했던 30대 가장이라 하네요. 재난과 사건·사고의 희생자들이 거동 불편한 노약자, 열심히 생계를 꾸려나가는 청년이라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런 와중에 나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무죄 소식은 차라리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어요. 만약 이 대표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대선 출마 자격 논란을 초래할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선고됐다면 그 이후 정치권의 이슈는 온통 이 대표가 대선후보로 나서는 게 맞느냐부터, 설령 이 대표가 대선에서 이기더라도 남게 될 대법원 최종심의 불확실성을 둘러싼 사법리스크 논란에 빨려들게 뻔하니까요. 최소한 그런 소모적인 정치 공방과 함께 또다시 전 국민이 법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은 일단 피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에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주간경향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각종 투쟁사업장에 뛰어가 연대하는 시민들 ‘말벌 동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조직화된 단체도 아니고, 대부분 계엄 사태 이전에는 사회적 투쟁 활동에 참여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왜 말벌처럼 몰려다니며 농성장을 찾는지, 이 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지를 들여다봅니다.

경영난에 처한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회사 측은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고용 불안에 떠는 노동자와 입점업체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이후 예상되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각종 지지도 여론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비공개 여론조사 자료를 토대로 정치권에 깊숙이 개입했던 명태균씨 같은 정치 브로커들도 움직이고 있겠죠. 여론 ‘조사’와 여론 ‘조작’의 경계를 넘나들며 들썩이기 시작한 정치 브로커의 세계도 들여다봅니다.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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