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파티플래너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지난 3월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응원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 3월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응원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최근 몇 주간 “탄핵 선고 언제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헌법재판소가 오늘 선고 날짜를 발표할 것’이라는 지라시에 속은 것도 여러 번. 마치 끝나지 않는 타임 루프에 걸린 것처럼 ‘이번 주 금요일 선고 유력’이라는 기사를 3주째 보고 있다.

심규협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사무국장을 인터뷰하기로 한 것도 탄핵 선고를 기다리다 지쳐버린 마음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어차피 끄떡도 하지 않는데 집회에 나가는 것도, 집회를 취재하는 것도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무력감도 느꼈다. 그 와중에도 꼬박꼬박 대규모 집회를 여는 사람의 정신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비상행동은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를 열고 있는 단체다. 비상행동 사무국장의 역할이 뭔지 막연하게 추측만 할 뿐이었는데, 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내는 것도 집회가 시작되기 전 무대와 음향 장치를 설치하는 것도 모두 사무국장의 일이었다. 바빠서 인터뷰할 수 없다는 사람에게 사정을 해 겨우 시간을 잡고 하루 정도 일과시간에 따라다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인터뷰하기 위해 마주 앉은 심 사무국장은 전날 집회가 끝나고 밤 11시 30분에 집에 돌아갔다가 새벽 5시에 집회장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낮과 저녁에는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어서 인터뷰는 새벽 6시부터 진행됐다. 해도 덜 뜬 시간에 인터뷰를 하는데도 그에게는 쉴 새 없이 전화가 왔다. 그는 “몸이 하나라서 많은 일을 전화로 해결한다”라며 머쓱해 했다.

심 사무국장을 따라다니면서 다른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이 집회장의 무대 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일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집회를 여는 다른 사람들의 시간도 사무국장의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가고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됐다. 집회 기획자도 사회자도 시민들이 지치지 않도록, 집회가 유쾌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처음에 인터뷰 영상을 기획할 때는 제목을 ‘광장을 여는 사람들’ 같은 웅장한 것으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영상은 ‘난세의 파티플래너’라는 제목으로 나갔다. 무대 뒤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어떻게든 응원봉이 반짝이는 집회를 열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혁명가보다는 파티플래너 같았기 때문이다.

심 사무국장에게 ‘탄핵 선고는 계속 지연되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집회밖에 없어서 답답하지 않냐’는 질문을 했다.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집회밖에 없다는 것은 어쨌든 집회를 할 수 있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단순한 대답이지만 집회를 직접 여는 사람에게 들으니 와닿는 말이었다.

이 글이 인쇄돼서 나가는 날에는 탄핵 선고가 됐을지 안 됐을지 잘 모르겠다. 탄핵 선고가 되지 않는다면 난세의 파티플래너들은 또 집회를 열어야 할 것이다. 난세의 파티플래너들이 열어주는 집회는 너무 반짝이고 신나기도 하지만, 그들의 과로가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꼬다리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