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캐나다·그린란드 찔러대기…‘핵심 광물’과 ‘중국 견제’가 키워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구의 합성사진 / 경향신문 자료사진
우크라이나, 캐나다, 그린란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두 달 새 보드게임 ‘부루마블’이 떠오를 정도로 이 나라들을 위협하고 찔러댔다. “사겠다”, “편입해라”, “되찾겠다” 등 노골적 언사로 내비친 트럼프 대통령의 야욕은 중구난방 터져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핵심 광물’과 ‘중국 견제’다. 미·중 경쟁 구도 속에 자원 무기화가 가능한 핵심 광물을 확보하는 일이 트럼프 정부의 최우선 외교 목표가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마음속 자리 잡은 ‘핵심 광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파국 회담’ 이후 우크라이나와의 광물 협정에 대해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강조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거칠게 몰아세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게 한 광물 협정은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및 주요 광물 자원에 대한 미국의 접근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광물 협정 논의는 지난해 9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제시한 ‘승리 계획’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가 면모에 맞는 제안을 구상한 셈인데, 핵심 광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관심에 불을 지핀 형국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인 2017년에도 핵심 광물의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공급 확보를 위한 행정명령을 내렸다. 뉴욕타임스(NYT)는 “핵심 광물은 최소한 이때부터 트럼프의 마음속에 있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해외 광물 자원을 취득하는 일이 집권 2기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외교정책 목표로 자리 잡았으며, 취임 직후 캐나다와 그린란드 등을 겨냥해 제국주의적 발언을 쏟아낸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지난 3월 15일(현지시간) 그린란드 누크에서 시위대가 미국 영사관 앞에서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라고 여러 차례 언급해온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전 총리는 지난 2월 토론토에서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실질적 위협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는 캐나다가 얼마나 많은 핵심 광물을 가졌는지 알고 있으며,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캐나다 합병을 생각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에 대해선 “국가 안보와 전 세계의 자유를 위해 미국의 그린란드 소유권과 지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고 드러내놓고 주장했다. 그는 집권 1기인 2019년에도 그린란드 영토 매입을 주장했는데, 당시에도 북극 항로 선점을 위한 움직임인 동시에 풍부한 미개발 광물 자원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그린란드엔 현재 기술로 채굴 가능한 희토류가 150만t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물 독점 중국 견제해야” 미국의 오랜 과제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그레이슬린 바스카란 핵심 광물 정책 총책임자는 “트럼프 취임 후 30일간 외교정책 결정을 살펴보면 이렇게 요약된다. 캐나다, 그린란드, 우크라이나는 자원이 풍부하고 파나마 운하는 자원 이동에 필수적”이라고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에 말했다. 이어 “우리는 (미국에서) 자원이 훨씬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중국에선 수십 년 동안 그래왔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핵심 광물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 집착의 뿌리에는 중국이 있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2022년 반도체, 무기, 정보기술(IT) 장비 등 첨단산업 소재로 쓰이면서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높은 50개 핵심 광물 목록을 지정했는데, 미국은 이중에서 41개를 50~100% 수입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29개 핵심 광물의 최대 생산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은 매장량뿐 아니라 공급망도 꿰차고 있다. CSIS에 따르면 희토류, 흑연, 코발트, 구리의 40~90%는 중국이 정제·가공한다. 나아가 중국은 광물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서방 제재에 반격할 무기로 활용한다. 2023년 8월부터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갈륨과 게르마늄의 대미 수출을 통제했고, 같은 해 12월 희토류 가공 기술 수출도 막았다. 미국으로선 공급망 안전의 큰 위협인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게 시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의 자원 독점과 무기화를 경계한 건 트럼프 대통령뿐만이 아니었다. 핵심 광물 전략의 윤곽을 잡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부터 역대 미 정부는 10년 넘게 핵심 광물 공급망 강화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초당적 노력을 기울였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도 우크라이나와 그린란드, 캐나다 등이 포함된 15개 나라와 광물 안보 동반자 관계를 맺고, 이들 국가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논의해왔다. 트럼프 정부 들어 달라진 점은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접근법을 취하기 시작했다는 것뿐인 셈이다.
“미국이 소유할게” 우크라 원전도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대뜸 소유하겠다고 주장한 우크라이나 원자력발전소 역시 핵심 광물을 확보하려는 의지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최근 논의 중인 원전은 유럽 최대 전력 생산 규모를 자랑하는 자포리자 원전이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광물 협정에는 광물을 추출하고 가공하는 일도 포함된다”며 “여기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자포리자 원전이 그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자포리자 원전은 우크라이나 내 티타늄, 철, 희토류 매장지와 가깝게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등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크라이나는 세계 핵심 광물의 약 5%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은 약 50만t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유럽 매장량의 3분의 1, 세계 매장량의 3% 수준이다. 티타늄 역시 유럽 매장량의 약 7%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럽 최대 규모의 원전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 위키피디아
다만 우크라이나에 매장된 핵심 광물은 가치가 검증되지 않았으며, 다수가 러시아 점령지에 분포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개발 광물 채굴에 나선다 해도 미국이 직면한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까지는 한참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콜로라도광산대 페인 공공정책연구소장 모건 바질리안은 포린폴리시에 “핵심 광물은 미 양당이 합의한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라면서도 “현실적으로 채굴은 복잡하고, 땅에서 광물을 추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공하고 시장에 내놓는 절차 등을 거쳐야 공급망 일부가 된다. 전쟁 중이 아닌 나라에서도 수십 년이 걸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