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
비상계엄의 겨울을 지나 봄은 어떻게 오는가? 탄핵 이후 과거 청산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우리는 사회의 미래상에 대해 더욱 치열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탄핵심판의 결과가 나옴에 따라 불안정한 정치의 국면은 정리가 돼가겠지만, 2016~2017년 촛불집회 때 걸었던 기대와 희망과는 다르다. 겨울이 간다고 봄이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봄은 어떻게 오는가? 먼저 우리는 당연하게 여겨왔던 기본조건이 무너질 수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물어야 한다. 기본조건을 수호하기 위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삶’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이 불안정한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돌파하고, 무엇을 향해 갈 것인가. 정책 수립에는 이러한 비전이 반영돼야 한다. 즉 기후 안정성을 지켜내기 위한 기후 정책은 우리가 지향하는 ‘좋은 삶’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예컨대 도심 내 내연기관차를 제한하는 정책 수립은 단순히 교통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걷고, 놀고, 쉬는 공간을 돌려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으로 논의돼야 한다. 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의 목적을 정립하고, 정책이 가치를 균형 있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구성원이 전환을 위한 정책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전환의 당사자들이 될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의 동력을 갖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탄핵 이후 과거 청산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우리는 사회의 미래상에 대해 더욱 치열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훗날 이번 겨울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까. 하늘의 엄중한 경고를 잘 받아들여 그 시기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자평하게 될지, 아니면 그때의 기회를 놓쳤다고 후회하게 될지, 그것은 지금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