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1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의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 / AP연합뉴스
‘탄핵안 가결’, ‘군 쿠데타 종용’, ‘정적 살해 협박’, ‘종교단체의 대통령선거 개입’, ‘특수 활동비 불법 유용’, ‘검사 출신 전직 대통령 망명 시도 의혹’. 필리핀에서 벌어진 일이다. 2025년 3월 11일,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재임 중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체포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압송됐다. 두테르테는 재임 기간인 2016~2022년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수천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필리핀 경찰은 마약과의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을 62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은 2016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최소 8663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사망자가 1만2000명 이상이라 판단하고 있으며, 필리핀 시민단체는 3만명 이상이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테르테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전직 대통령이자 현직 부통령의 아버지라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사건이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두테르테 집안의 정치적 동맹 관계였던 마르코스 대통령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하원,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탄핵안 가결
필리핀 하원은 지난 2월 5일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이자 현직 부통령인 사라 두테르테의 탄핵안을 가결했다. 탄핵안은 하원의원 306명 중 215명이 압도적으로 찬성했고, 탄핵 여부는 향후 상원의원 전체 24명 중 3분의 2가 동의하면 최종 확정된다. 사라는 한국의 특수활동비 성격의 기밀정보자금(CIF) 6억1250만페소(약 154억원) 유용 혐의와 마르코스 대통령 암살 위협 발언으로 탄핵 대상이 됐다. 사건의 발단은 2023년 8월로 사라 부통령이 교육부 장관을 겸직하면서 이례적으로 기밀정보자금을 요구하며 시작된다. 세부 집행 내역이 공개되지 않는 기밀정보자금은 주로 대통령실과 국방부, 경찰, 법무부 등 국방·안보 관련 부서에 배정된다. 사라는 전례 없이 부통령실과 교육부 장관실에 기밀정보자금을 받아냈지만, 이는 결국 정치 가도에 치명타가 됐다. 2023년 10월, 야당 의원들은 사라 부통령이 11일 동안 기밀정보자금 1억2500만페소(약 31억5000만원)를 사용했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부통령실은 허위 영수증을 제출했다가 들통났고, 사용 내역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 2024년 6월 19일, 야당의 압박 속에 사라는 부통령직은 유지한 채 겸직하던 교육부 장관직을 포함한 내각에서 사퇴했다.
2024년 9월, 필리핀 정부는 3000여명의 국가 경찰과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두테르테의 정치 기반인 다바오시에 있는 ‘예수그리스도왕국(KOJC)’을 급습했다. 15일 동안 격렬한 대치 끝에 붙잡힌 KOJC 창립자 아폴로 퀴볼로이 목사는 아동 성매매, 성매매 강요, 자금 세탁 등의 혐의로 미국 FBI에 최고 등급 지명수배된 인물이다. 퀴볼로이 목사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정신적 멘토이자 최측근이다. 필리핀 언론 선스타의 2014년 3월 2일자 보도에 따르면 퀴볼로이는 1998년 두테르테와 첫 만남을 회상하며 당시 다바오시 시장이었던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되는 예지몽을 꾸었다고 밝혔다. 검사 출신으로 필리핀 남부 최대 도시의 시장이었던 두테르테는 이 시기부터 대통령을 꿈꾸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퀴볼로이는 수백만명의 신자를 동원해 두테르테 선거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두테르테는 자신의 최측근인 퀴볼로이 목사의 체포로 마르코스 대통령과의 정치적 동맹이 깨졌음을 확신하게 됐다.
2024년 10월, 사라 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자신에 대한 정치적 공세가 계속되면 대통령 아버지의 시신을 파내 바다에 뿌리겠다’고 협박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다. 거친 발언으로 유명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답게 사라의 막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4년 11월,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을 겨냥한 암살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며 경호원들에게 “만일 내가 죽으면 마르코스 대통령과 영부인, 하원의장까지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고 공개 발언을 했다. 사라는 이 명령은 농담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며 필리핀 전역에 충격을 안겼다. 며칠 후 두테르테는 한술 더 떠서 ‘지금의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군밖에 없다’며 공개적으로 군의 개입을 통한 쿠데타를 부추겼다. 하지만 마르코스 대통령에 장악된 군은 반응하지 않았다. 2025년 2월, 필리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두테르테 전 대통령과 사라 부통령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이자 고향인 민다나오섬 분리독립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한다. 민다나오섬은 두테르테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지역일 뿐만 아니라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인구가 2200만명에 달한다. 특히 이 지역은 무슬림이 인구의 6%를 차지하는데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이 수십년 동안 분리독립 투쟁을 벌이다 2019년 자치지역을 확보하며 평화 조약을 맺은 곳이다. 두테르테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국가적 혼란을 조성하려는 속셈이었다.
두테르테의 홍콩 망명 시도와 체포
두테르테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 가능성을 미리 감지한 듯했다. 2025년 3월 7일, 두테르테는 홍콩에 거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에게 연설하겠다며 급히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필리핀 베테랑 기자들이 만든 독립언론 베라파일즈(Vera Files)는 2025년 3월 10일 기고문을 통해 ‘두테르테의 홍콩 망명 시도 의혹’을 보도했다. 해당 기고문을 쓴 안토니오 J. 몬탈반 2세는 두테르테가 필리핀 국적기가 아닌 캐세이퍼시픽 항공 일반석을 이용한 점을 지적한다. 또한 야행성인 두테르테가 아침 7시 30분 비행기를 탔다는 점에서 인터폴의 체포를 피하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두테르테는 재임 동안 적극적인 친중 행보로 중국의 환심을 샀다. 2023년 7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두테르테가 전직 대통령임에도 베이징으로 초청해 극진히 대접하기도 했다. 두테르테는 시진핑과의 친분과 국제형사재판소 회원국이 아닌 중국의 법적 지위를 고려해 홍콩으로 가면 체포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중국이 두테르테의 정치적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인지, 혹은 두테르테가 정말로 연설 목적으로 홍콩으로 간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결국 두테르테는 3월 11일 홍콩에서 귀국하자마자 마닐라공항에서 체포됐다.
동남아시아의 필리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생생하게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필자의 기분 탓일까?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