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AI 슬롭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슬롭(slop)은 흘러넘친 국물 찌꺼기를 뜻하는데, 영혼이 담기지 않은 저품질 콘텐츠를 말한다. 말 그대로 생성형 AI 등 각종 자동화 도구를 활용한 산출물이 여기저기 범람하고 있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컴퓨터 합성 콘텐츠는 컴퓨터와 함께 언제나 있었다. ‘짤방’의 역사만큼이나 B급 콘텐츠가 문화에 남긴 긍정적 발자취도 적지 않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적어도 인간의 손길이 들어 있었다. 최종 결과물은 허접스러워도 의도가 들어 있었고, 고생의 흔적이 들어 있었다. 즉 사람이 만든 수제품이었고, 여기엔 제어장치가 있었다. 그건 바로 산출물의 총량이 집단의 잉여에 연동된다는 점, 즉 한가한 사람의 수에 제한이 있듯 적정량에서 유통은 멈췄다.
바야흐로 AI 슬롭의 시대, 자동화 도구로 얼마든지 찍어낸다. 구정물처럼 악취를 풍기며 저품질 AI 콘텐츠는 퍼져나가고, 양으로 수제 콘텐츠를 압도하며 정보 생태계를 교란한다. 이러다 말겠지 하기에는 그 추세가 심상치 않다.
근래 ‘챗GPT와 영상짜깁기로 쇼츠 만들어 얼마 벌기’와 같은 꼼수는 강좌가 되어 유통되기도 한다. 생성형 AI와 각종 영상 합성 도구로 블로그도 동영상도 손쉽게 찍어낼 수 있는 요즘, 여기에 돈이 엮이면 트렌드는 가속도가 붙는다.
우리가 멍하니 쇼츠와 뉴스피드에 흘러가는 정보를 보는 대가로 목돈은 플랫폼에 몰렸다. 정보의 취사선택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공허한 관심은 다 돈이었다. 콘텐츠 제작자에게 돌아갈 원가를 낚아채려 혈안이 된 무리는 오늘도 슬롭을 찍어낸다.
사람들의 군침만 돌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성찬이든 국물 찌꺼기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플랫폼은 이를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고, 굳이 안 할 수도 있다. 우리의 관심이 한곳에 묶이고, 그 묶인 관심을 내다 팔 수 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서다.
AI 슬롭은 인터넷 알고리즘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인간이 하나를 만들 때, AI는 100개쯤 만들어 쏟아붓는다. 품질은 둘째 치고 내용의 진위도 상관없다. 챗GPT로 대본을 쓰고 그림을 삽입한다. 요즘은 비디오도 생성한다. 이러한 슬롭은 여론을 조작하고 바이럴을 일으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그렇게 백개, 천개, 만개를 쏟아 넣다 보면 하나쯤 ‘터진다’. 수백만 뷰가 나오고 채널은 ‘떡상’을 한다.
바로 ‘알고리즘 로또’라는 얼개다. AI 슬롭 계정 운영자들은 알고리즘 로또에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때까지 수백, 수천 번 알고리즘을 두드린다. 바이럴은 그 부산물이다.
예전에 우리는 정보를 스스로 검색했다. 지금도 유튜브와 챗봇에 뭔가를 입력하고 있으니 같은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상당히 다르다. 날것 그대로 채취해 요리하는 일과 레토르트 간이 식품을 띵 하고 꺼내 먹는 것은 분명 생활과 건강에 차이를 만든다. 정보를 검색하는 게 아니라 TV 채널을 돌리듯 관심을 상납할 뿐이다.
정보를 스스로 찾던 시절, 블로그를 찾아 구독했고, 믿고 보는 이들의 글을 찾아 읽었다. 다들 어디 가셨는지 지금은 알고리즘이 배달하는 정보만 보고 있다. 전례 없는 양극화로 치닫는 세태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성 있는 콘텐츠의 가치는 결국 더 높아지리라 믿고 싶지만, 그런 콘텐츠는 점점 더 발견되지 않는다. 시간 순서대로 볼 수 있었던 시대의 피드라면 내가 구독한 피드에 드러나겠지만, 지금의 알고리즘 피드에서는 그런 ‘노잼’ 진지 콘텐츠는 저 뒤편으로 밀려나버리기 때문이다. 악화는 양화를 대량으로 구축하고 있었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