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고전 원작 무대 ‘박제냐 재해석이냐’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연극 <만선>·<세일즈맨의 죽음>, 뮤지컬 <명성황후>

연극 <만선>에서 곰치(김명수 분)와 구포댁(정경순 분)이 폭풍우 속에서 대립하는 장면 / 국립극단 제공

연극 <만선>에서 곰치(김명수 분)와 구포댁(정경순 분)이 폭풍우 속에서 대립하는 장면 / 국립극단 제공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영화 제목이 아니다(홍상수 감독의 2015년 제작 영화 제목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이다). 조석변개하는 요즘 시국을 풍자하는 표현 중 하나다. 동시대성이 생명인 공연계에서 고전을 원작으로 한 무대를 기획할 때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연극 <만선>·<세일즈맨의 죽음>, 뮤지컬 <명성황후> 등 한창 상연 중인 작품들이 비근한 예다.

연극 <만선>(심재찬 연출·이태섭 무대·신호 조명·김철환 음악)은 ‘한국적 리얼리즘의 정수’로 꼽힌다. 한국전쟁의 상흔 속 산업화에 소외된 1960년대 어촌 서민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천승세 작가가 1964년 발표하며 초연된 이후 연극과 영화로 꾸준히 대중과 만나왔으나 21세기에 들어 뜸했다. 극단적 가부장과 선주(船主)들의 횡포 등은 현대에 공감하기 어려운 설정이니 당연하다. 2020년 들어 윤미현 작가가 윤색에 참여하고 심재찬 연출이 진두지휘하면서 <만선>은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만선을 향한 어부들의 집념과 삶을 향한 열망이 5t 분량의 폭풍우와 함께 스펙터클하게 재현됐다. 마지막 장면에 쏟아지는 격랑은 프로시니엄(무대와 객석이 구분되는 일반적인 형태) 극장을 남도의 해안가로 옮겨놓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새로운 해석, 끊임없는 변주

아쉬움은 남았다. 목소리 없이 소비되는 여성의 위치는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5년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만선>은 또 달라졌다. 선주의 횡포에 무기력하게 침잠하는 서민의 삶은 그대로지만 그들은 각자의 욕망과 집념을 마음껏 표현한다. 만선을 향한 곰치(김명수 분)의 불합리해 보이는 고집이 구포댁(정경순 분)의 절규에 조금이나마 수그러드는 장면이 사이다처럼 시원하다. 선주 제순(김재건 분)의 횡포를 딛고 만선을 향한 욕망을 실현하려는 곰치는 아들 둘을 바다에서 잃은 아내 구포댁의 만류에도 배를 띄운다. 아들 도삼(황규환 분)과 동네 청년 연철(성근창 분)의 합리적인 문제 제기도 무지르고 욕망에 잠식돼 올린 쌍돛대로 인해 폭풍우를 질주하다 좌초하고 만다. 사람도 물고기도 모두 잃고, 딸 슬슬이(강윤민지 분)도 자결하는 설상가상의 상황에서 하나 남은 갓난쟁이 아들을 어부로 키우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정신을 놓은 구포댁은 빈 배에 갓난쟁이 아들을 담아 뭍으로 흘려보낸다. 살린 것인지 죽인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행위는 어부로 살다 죽겠다는 곰치의 집념과 정면 대치한다. 당신 뜻대로는 되지 않을 거라는 구포댁만의 집념이다. 이를 형상화하는 거센 폭풍우와 격랑이 일렁이는 마지막 장면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한국적 사실주의의 정수를 기록한다.

아서 밀러의 대표적인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연우 윤색·김재엽 연출) 역시 한국적인 재해석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작품의 캐스팅이다. 70대에서 80대 배우가 대거 캐스팅되면서 한국적인 고령화 문제와 저출산 문제, 날로 높아지는 실업 문제가 화두로 와닿는다. 평생 한 직장에 근속한 윌리(박근형·손병호 분)는 성실한 아내 린다(손숙·예수정 분)와 훤칠한 두 아들 비프(이상윤·박은석 분)와 해피(김보현·고상호 분)와 함께 그림 같은 집에서 산다. 겉으로는 평범한 중산층의 삶이지만 한 꺼풀 들춰내면 모래로 쌓은 가정이다. 윌리는 환각에 시달리다 해고당하고 보험금을 낼 돈이 없어 친구에게 빌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호기롭게 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의지하지만, 사실 아들들도 모두 정상이 아니다. 작품은 윌리의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을 음향효과와 조명으로 이해하기 쉽게 연출했다. 극장을 가득 채운 중장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관객들을 배려한 듯하다. 끝까지 단벌로 등장하는 윌리의 고단함, 피곤에 찌들어 위태롭게 퇴근한 후 다음 날 저녁 자살에 이르기까지 윌리의 24시간이 190여분 공연시간을 체험한 관객들의 시간과 맞물린다. 고령화 시대, 은퇴 자금 마련에 허덕이는 삶은 대다수 중장년 관객들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뮤지컬 <명성황후> 마지막 넘버 ‘백성이여 일어나라’의 한 장면 / 에이콤 제공

뮤지컬 <명성황후> 마지막 넘버 ‘백성이여 일어나라’의 한 장면 / 에이콤 제공

역사 왜곡? 시대정신?

모든 고전 작품이 재해석을 거듭하며 동시대와 닿는 것은 아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명성황후>(김광림 각색·양인자 작사·김희갑 작곡·안재승 연출·윤호진 예술감독·김문정 음악·박동우 무대)는 작품 특유의 세계관 안에 머물러 관객들을 견인한다. 이문열 작가가 1994년 발표한 희곡 <여우사냥>을 원작으로 1995년 초연된 이후 국내에서 꾸준히 공연됐다. 2000년 전후에는 뉴욕과 런던에서도 상연된 바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창작 뮤지컬이다. 임오군란(1882)과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팩션(faction·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허구) 뮤지컬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작품을 여는 서곡, 영상을 통해 현재 시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광복을 지나 19세기 말로 빠르게 타임슬립한다. 30주년 기념 공연이니 무언가 새로운 해석으로 관객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근대 박물관이나 사극에서 익숙하게 접한 미장센과 서술적이고 예스러운 넘버들이 반복된다. 1막의 가장 큰 볼거리인 무과시험과 명성황후(신영숙·김소현·차지연 분)의 수태굿 장면도 전통공연에서 접하는 퍼포먼스의 연장이다. 고종(강필석·손준호·김주택 분)의 무력감과 흥선대원군(서영주·이정열 분)의 집착,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지켜낸 홍계훈(양준모·박민성·백형훈 분)의 활약상이 등장하지만 나열식이다. 미니멀한 무대에 경사형 회전무대를 거닐면서 가치관이 바뀌고 정치적인 목소리 내기에 나서는 명성황후의 변화 역시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나마 명성황후가 잔혹하게 시해당한 이후 무력하게 남겨진 세 남자의 처연한 넘버 ‘이제 나는 어찌 살꼬’와 ‘궁금하다 황천후토’의 삼각형 미장센이 현대적인 변주다. 시대착오적인 서사 구조와 정형적인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명성황후>는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남긴다. 40여명 출연진 모두가 혼령이 돼 관객들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며 합창하는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현 시국에 고뇌하는 관객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문제의식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연극 <만선>과 <세일즈맨의 죽음>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후회 없는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우리 안의 ‘한’과 ‘저항정신’을 음악적으로 끄집어낸다. 철학자 헤겔은 정치·사회·예술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을 응축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만선>의 5t급 폭풍우와 <세일즈맨의 죽음>의 객석까지 환하게 비치는 강렬한 자동차 헤드라이트, <명성황후>의 정수리 끝까지 울리게 하는 초고음의 아리아가 그러하다. <명성황후>와 <만선>은 3월 30일까지 서울에서 상연한다. <세인즈맨의 죽음>은 5월까지 전국 투어 중이다. <명성황후> 역시 4월 중 전국 투어공연이 예정돼 있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이주영의 연뮤덕질기바로가기

이미지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