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EPFL)에서 개발한 BCI칩 | EPFL 자료사진
인류 역사에서 우리는 기술을 이용해 꾸준히 인간의 신체 능력을 확장해왔다. 이제 그 도전의 최전선이 인간의 두개골 너머 뇌 속으로 향하고 있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Computer Interface)’가 그 주인공이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EPFL),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Neuralink) 등 몇몇 기관은 제한된 환경에서 90%에 이르는 정확도로 사람의 신경 활동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기술을 공개하며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뇌에 이식한 칩이 뇌 신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사용자의 생각을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입력장치를 손 대신 뇌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적 능력 자체를 극적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근 고급 BCI 기술을 통해 장애인들이 스스로 컴퓨터를 제어하고 자기 생각을 텍스트로 표현하며, 자율주행 휠체어나 로봇 보조 장비를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이 기술의 영향력은 상당할 전망이다. 연구에 따르면, 머지않아 새로운 언어 습득이나 복잡한 기술 습득에 들어가는 시간이 최대 40%까지 단축될 수 있다. 즉 인간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고, 노동 생산성 또한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를 통해 사물을 조작하거나 복잡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 자체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그 기술이 지닌 윤리적 문제와 사회적 책임 또한 커지게 마련이다. 인간의 사고와 감정, 기억과 꿈까지 접근 가능한 BCI 기술의 등장은 인류에게 어떤 도전 과제를 안기게 될까? 인간의 뇌에서 데이터를 직접 가져온다는 것은 그 데이터가 인간의 가장 내밀한 생각과 감정, 기억 등을 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개인의 가장 깊숙한 프라이버시 영역을 건드리는 기술일수록 윤리적 시비는 더욱 심각하게 대두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BCI 기술의 대중화는 곧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데이터라는 형태로 빅테크 기업에 축적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만약 이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악의적으로 사용된다면 사생활 침해 수준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정보는 사용자의 심리를 더욱 정밀히 조작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인간의 생각을 기업의 이익에 맞게 조정하거나 왜곡할 가능성까지 존재한다. 즉 인간의 내면적 자율성이 기술과 자본의 통제 아래 들어갈 위험이 있다.
어쨌든 기술 발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AI의 발전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BCI에 의한 인류의 전례 없는 ‘인지적 업그레이드’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BCI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기술의 경이로움에 무조건적 찬사를 보내는 것도, 위험성을 이유로 무작정 회피하는 것도 아니다. 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냉정하고 투명하게 평가하면서 다양한 윤리적 문제와 사회적 영향을 미리 고민하고 준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간의 뇌가 컴퓨터와 연결되는 새 시대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류한석 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