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허술하다. 공포 장면은 주인공 뒤로 검은 그림자가 쓱 지나가거나, 과장된 음향효과와 함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시신을 비춘다. 1960년대 초창기 한국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엔케이컨텐츠
제목: 악령: 깨어난 시체(The Corpse)
제작연도: 2025
제작국: 베트남
상영시간: 122분
장르: 공포, 스릴러, 미스터리
감독: 도안 낫 트룽
출연: 광 투안, 카 누
개봉: 2025년 3월 19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내가 베트남산 공포영화를 접한 적 있던가. 영화관에 들어가며 한 생각이다. 있긴 있다. 조안, 차예련 주연의 <므이>(2007)다.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몇몇 장면만 삽화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한·베 합작영화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베트남 단독으로 2편 <므이: 저주 돌아오다>(2022)가 제작됐고, 국내 개봉까지 한 모양인데 후속편 제작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많은 편수는 아니지만, 베트남에서도 공포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시즌에는 메콩강에 있다는 물귀신을 소재로 한 영화 <마야>도 수입돼 개봉한 모양인데, 역시 깜깜무소식이었다.
영화를 보며 끊임없이 스스로 돌아봤다. 필자가 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 같은 건 아닐까. 영화를 보며 계속 떠올랐던 것은 <월하의 공동묘지>(1967) 같은 영화들이다. 엔딩크레딧에 붙어 있는 영화가 근거하고 있다는 ‘실제 사건’ 다큐 영상에서 떠오른 건 다시 <월하의 공동묘지>를 만든 권철휘 감독이 그럴듯한 공포 장면을 만들기 위해 당시 미아리 공동묘지에서 1주일간 밤을 새웠다는 일화 같은 것이었다.
관 속에서 발견된 목걸이의 저주
영화의 중심 이야기는 도시에서 살다가 낙향한 가족 이야기다. 남편 쿠앙은 아내 누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들 산과 살고 있다. 이 남자, 마음씨는 좋지만 능력 없는 백수다. 돈이 떨어지자 상속받은 선산을 팔아치우려 한다. 지관과 함께 나타난 매수자는 선산에 무연고 묘가 있는 걸 발견한다. 산을 팔기 전에 무연고 묘를 처리하라고 하자 쿠앙은 동네 파묘꾼을 데리고 가서 파기 시작한다. 마침내 드러나는 관. 관 속에는 낡은 목각인형이 있는데 꽤 값나가 보이는 보석 목걸이를 하고 있다. 임시로 쿠앙의 집에 가져다 둔 관에 파묘꾼이 몰래 접근해 보석 목걸이를 훔쳐 간다. 목걸이엔 저주가 걸려 있었고, 목걸이를 손에 넣은 사람들은 차례로 죽어 간다.
남편이 그 지경인지라 아내 누는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영화에서 뚜렷하게 설명은 안 나오지만, 하필이면 직업이 염습(殮襲)하는 염장이다. 영화는 이탈리아 B급 호러들이 신체 훼손과 시신을 집요하게 비추는 것처럼 시신 묘사에 집착한다(왜 저런 직설적인 제목을 붙였지? 라는 의문이 해소된다). 아마도 공포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은 그 대목에서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눈을 가리지 않을까. 영화는 아마도 베트남에서 민간 전승됐을 다양한 괴담을 에피소드로 사용한다. 가장 인상적인 연출은 술에 취한 파묘꾼 카가 도박장에서 나와 집에 돌아갈 때다. 술이 떨어진 카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동묘지에 누군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놓아두었던 반쯤 찬 술병이다. 감사를 표하고 술병을 잡고 마시려 할 때마다 공중 어딘가에서 손이 나와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술병을 빼앗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놓는다. 있음 직한, 그럴듯한 괴담이다. 연출도 훌륭하다. 카메라는 잘생기고 마음씨만 좋을 뿐, 능력은 없는 쿠앙의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시신이 차고 있는 시계가 탐난 누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몰래 훔치려고 하지만 시신의 ‘보복’을 당한다.
‘만들어진 전근대’의 근대에 대한 복수
가족을 건사하지 못하는 가부장의 ‘위기’는 자식을 돌봐주는 남편의 고모에게 밥도 안 주는 못된 조카며느리 탓으로 몰아간다. 물론 이대로 끝난다면 결국 희대의 악녀가 저주를 받는 건 당연한 것이 되겠지만, 영화의 중반부쯤엔 감독이 감춰놓은 반전을 눈치채게 된다. 아마도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의 초반부에도 복선을 숨겨놨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전반적으로 허술하다. 대부분의 공포 장면은 주인공 뒤로 검은 그림자가 쓱 지나가거나, 과장된 음향효과와 함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시신을 비추는 진부한 연출의 결과다. 1960년대 초창기 한국 공포영화 연출을 떠올린 까닭이다. 영화는 ‘근대에 대한 전근대의 복수’라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 공포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영화의 인트로에 사용된 마녀의 의식 장면이라던가, 동굴을 나와 밤하늘을 나르는 박쥐 따위는 그 전근대의 고유성조차 이미 근대가 발명한 전통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베트남 영화에 흐르는 유교 문화

/정용인 기자
영화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프리미어 개봉한다. 왜 하필 한국일까. 의문이 들어 시사회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사진)에 참석했지만, 뚜렷한 답은 못 들었다. 베트남 영화시장에서 CGV의 멀티플렉스가 꽤 선전하고 있고, 찾아보면 CJ ENM이 히트작 다수 제작에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한국투자사가 관여하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자세히 찾아보진 못했다. 시사회장엔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학생들과 커뮤니티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사실, 기자나 배급 시사 없이 일반시사로 최초 공개하는 것도 이례적이다(기사를 쓰면서 살펴보니 개봉을 앞두고 기자·배급 시사 일정은 따로 다시 잡혀 공지돼 있다). 주연을 맡은 남녀 배우들은 베트남 쪽에서는 꽤 유명한 청춘스타인 모양이다.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고 간담회에 참석한 누 역을 맡은 카 누는 쩐 탄 감독의 가족 코미디 영화 <더 하우스 오브 노 맨>(2023), <마이>(2024)의 주연을 맡은 국민배우라고 한다(“공포 장르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밝혔다). 앞서 영화를 보며 <월하의 공동묘지>의 권철휘 감독 일화를 떠올렸다고 했는데, 상영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도안 낫 트룽 감독은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며 “실제로 산꼭대기에 올라가 연구했다”라고 밝혔다.
영화에서 강조한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라는 건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덧붙여 있는 “아내를 잊지 못해 무덤에 묻은 시체를 파내 집에서 수십 년간 동거했던 남자의 이야기”(자료화면으로 실제 그 남자의 일화가 짧게 덧붙여져 있다)인 듯싶다. 아마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같은 곳에서 다룰 만한 에피소드다. 사실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일종의 견강부회다. 영화의 절정부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발화점이 됐을 그 이야기는 암시되지 않는다. 찾아보니 ‘베트남 공포영화의 제작현황과 법 제도’를 다룬 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통신원 리포트가 있어 읽어봤다. 어쨌든 사회주의 나라인 베트남 영화법엔 ‘센서십’, 다시 말해 검열에 관한 규정이 있어 이게 영화제작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창작 의욕을 크게 떨어뜨리는 자기검열을 가져온다고 한다. 법 제11조를 보면 “사회주의 공화국에 대항하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행위” 등과 함께 “외설적이고 타락한 생활방식, 범죄행위, 사회악, 미신 및 반동적 사상을 전파하거나 국가와 민족 간의 증오를 조장하고, 건전한 미풍양속을 해치는 선전행위”가 금지돼 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유교 사상이 사회주의 나라인 베트남 대중문화에도 뿌리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