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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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기자

이효상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중심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이 퍼지자, 가짜뉴스가 문제라는 진단이 대두했다. 정말 그럴까.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 중에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가짜뉴스는 문제지만,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은 될 수 없다. 오히려 가짜뉴스를 문제 삼는 건 진짜 문제를 가리는 측면이 있다.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 주장의 핵심은 계엄이 잘못된 게 없다거나, 잘못됐다 하더라도 저쪽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하고 윤상현 의원 등 국민의힘에서 증폭했던 그 논리다. 이는 가짜뉴스보다 해악이 컸다. 현직 대통령이자 주요 사건 피의자의 말을 지나칠 수 없었겠지만, 그의 말을 여과 없이 보도한 언론의 책임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논리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건 감정이었을 것이다. 계엄에 대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해 입장이 다른 이들을 한데 묶은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증오하는지였다. 이를 기준으로 이쪽 편과 저쪽 편을 구분했고, 우리 편의 정당성을 판가름할 때도 그 준거를 상대방에 뒀다. 예컨대 ‘저쪽이 더 잘못하지 않았느냐’는 식이다.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태도를 우리는 몇 해 전부터 목격해왔다.

이들은 더 과격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저쪽 편을 벤치마킹해 자신들의 진지를 세웠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입시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 민주당은 “조국은 송사리”라고 했다. 옳고 그름은 없고 저쪽보단 낫다는 상대 평가만 있을 뿐이다. 법원과 언론을 불신하는 방식도 닮았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혐의를 보도한 언론을 두고 “검찰의 애완견”이라고 했고, 이 대표가 유죄 판결을 받자 민주당은 “미친 정권의 미친 판결”이라 했다.

극우세력은 사회의 오래 곪은 환부에서 자라 광장으로 튀어나왔다. 사회의 파탄을 알리는 서막이 아니라 이미 일그러진 사회가 내놓은 결과물일지 모른다. 결정적인 단 하나의 원인은 없고 손쉬운 해법도 없다. 우리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원칙과 품위를 지키며 싸워나가고 대화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공자님 말씀을 해법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을 만큼 우리 사회는 이미 많이 곪아 있는지도 모른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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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