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7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81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축사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육사 43기)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어서다. 다음 두 사례가 대표적이다.
#1 “헌법적 사명에 근거한 올바른 충성과 용기, 책임이 내재화됐을 때 부하들로부터 존경받고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지난 2월 27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81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나온 김 대행의 축사 중 한 대목이다. 그의 축사에서는 ‘헌법’과 ‘올바름’이라는 단어가 각각 네 차례 등장했다. 그는 상관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상명하복’이 아니라 헌법 가치를 수호하는 올바른 충성을 강조했다.
김 대행의 ‘헌법’과 ‘올바름’을 강조한 사관학교 축사는 ‘대적필승’의 정신이나 ‘투철한’ 안보의식을 강조했던 과거 국방부 장관들의 단골 축사 메뉴와는 사뭇 결이 달랐다. 이는 12·3 비상계엄을 모의하고 실행한 육사 출신 지휘관들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군 통수권자와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수행한 데 대한 반성이었다.
#2 “(55경비단이 경호처) 부하는 아니다.”
김 대행이 지난 2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내란 국정조사특위에서 한 발언이다. 그는 군 선배인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육사 42기) 질문에 “법 집행 과정에서 군 병력을 투입해 물리적 행위를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고, 부여된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한 것이 월권이고 직권남용이라면 책임을 지겠다”고 잘라 말했다. 순간 임 의원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애초 임 의원은 김 대행이 자신의 질문 내용에 동조할 것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대행이 육사 1년 후배인데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대선 때 주도했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 캠프의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에 이름을 올렸던 사이여서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임 의원의 기대는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여야 모두 의심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김 대행에 대해 ‘기회주의적 모습이 엿보인다’는 식으로 색안경으로 보는 모양새다. 이는 거꾸로 그가 정치권의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중립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재인 정권 때 수도방위사령관(육군 중장)이었던 김 대행은 청와대가 준장·소장급이 가던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으로 임명하려 하자 ‘건강상 이유’로 거절하고 전역 신청을 했다. 그의 전역 배경을 놓고는 상반된 입장이 나온다. 김 대행을 높이 평가하는 측은 김 대행이 ‘3성 장군이 국방비서관으로 가는 것은 군의 입지를 스스로 격하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해 군복을 벗었다고 말한다. 반면 김 대행이 처음에는 국방비서관 제안을 수락해놓고도 격무가 불가피한 것에 부담을 느껴 ‘허리가 안 좋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열 받은’ 청와대가 업무 수행이 힘들 정도라면 그에게 전역할 것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민주당 측은 그의 정체성을 의심해 김 대행에게 ‘알박기’ 인사권을 행사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김 대행은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전, 군복을 입은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과 이승오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을 대동한 채 ‘헌법에 맞지 않는 지시라면 군 통수권자의 지시도 따르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혔고, 이에 국민은 2차 계엄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었다. 사실상 ‘제2 계엄 거부’ 선언이었다. 대신 강경 보수 성향 예비역 장성들은 ‘군 통수권자에 대한 항명’이라고 비난했다.
김 대행은 대통령 경호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55경비단에 나서지 말 것도 지시했다. 이에 대해 여권에서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일부 예비역 장성들은 ‘김 대행이 대통령을 보호하지 않는다’며 그를 비판했다. 육사 선배들의 항의 전화와 문자는 덤이었다.
전력 분야 전문가인 김 대행은 서욱 국방부 장관 시절 수방사령관에 임명됐다. 김 대행에 비판적인 인사들은 문재인 정권 당시 있었던 이 인사를 놓고 서 전 국방부 장관과 김 대행의 육사 기훈중대(기초군사훈련 중대) 인연까지 거론한다. 김 대행이 육사 43기로 가입교해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 육사 2년 선배로 기훈중대 간부였던 서 장관과 각별했던 사이로 문 정권에서 중용됐다는 것이다.

지난 2월 27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81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축사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 인사 전망
국방부는 차관이 2인자인 다른 행정부처와 달리 군 서열로만 따지자면 ‘넘버 9’이다. 장관과 대장 7명 다음이다. 구체적인 군 서열은, 국방부 장관(1위)-합동참모본부 의장(2위)-육·해·공군 참모총장(3~5위)-대장(6~8위, 지상작전사령관·제2작전사령관·한미연합사 부사령관)-국방부 차관(9위)-중장 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선호 차관은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을 맡아 국방행정은 물론 군령과 군정 책임자까지 겸하는 ‘1인 3역’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그가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총장들의 사관학교 선배 기수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12·3 비상계엄 이후 김 대행은 고비마다 단호한 리더십을 발휘해 혼란을 수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군 인사다. 군은 시기적으로 4월 전반기에 장군 인사를 해야 한다. 3월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육군은 참모총장부터 직무대리 체제다. 장성 인사는커녕 예하부대의 적극적인 임무 수행에도 걸림돌이다. 인사가 늦어지면 군단장과 사단장 등 실병력을 지휘하는 장성급 지휘관들의 근무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사고 발생도 많아진다. 전례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면서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군 인사가 하염없이 늘어지면서 야전이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군사안보를 책임지는 국방부 장관의 공석은 다른 국무위원 공석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당장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국익이 걸린 협상을 해야 한다. 직무대행으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 대행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에게 차기 국방부 장관 임명을 공식 건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문제는 여야 합의로 차기 국방부 장관 임명을 동의하기 전까지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국방부 장관 임명이 어렵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인용 여부와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 통과 변수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김 대행은 전군에 군 인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음을 공식화하고 군심을 다독이고 챙겨야 한다. 그에게 주어진 책무다.
차기 국방부 장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12·3 비상계엄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 거기에는 읍참마속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후 ‘정치의 틀’이 아닌 ‘전쟁을 준비하는 전문집단의 틀’에서 군 인사를 해야 한다. 12·3 비상계엄의 경과와 교훈을 담은 <계엄 백서>도 발간해야 한다. 만약 여야가 국방부 장관 임명의 시급성에 동의해 당장 후보자를 고른다면 김 대행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가장 유력한 카드라는 데는 군 안팎에서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