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보라색 넥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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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리 기자

이혜리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20일 충남 아산시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하면서 보라색 넥타이를 맸다. 이날 민주당은 전국여성위원회 발대식을 열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X(엑스·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여성의 권리를 상징하는 보라색 넥타이를 착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계엄 후) 새벽마다 국회 정문을 밤새워 지키는 여성분들을 봤다”, “깨어 있는 시민의 주축이 바로 우리 여성들”이라며 여성을 치켜세웠다.

한 X 이용자가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보라색 넥타이 착용이 감동이라는 취지의 글을 썼다. 그런데 다른 X 이용자들 반응은 싸늘했다. “왜 감동을 받는 것이냐. 바뀐 건 아무것도 없는데”, “보라색 넥타이 맸다고 여성 인권이 나아지냐”, “보라색 넥타이에 감읍할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여성정책을 내는지 봐야 한다”, “그거 맬 정신머리 있으면 법안이나 좀 바꾸고 범죄 형량 늘려달라”, “넥타이보다 더 원하는 건 실질적인 정책과 행동”. 비판의 말이 쏟아졌다.

2023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비동의 강간죄 도입 검토’를 발표한 여성가족부 직원들을 감찰조사하고, 이후 직원들이 경고·주의 조치를 받은 사실을 취재하면서 놀랍고 안타까웠다. 윤석열 정부가 여성정책과 여가부를 어떻게 후퇴시키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발표 철회에 대해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사회적 합의 등이 필요한 사항으로 법 개정 추진계획이 없음을 명확히 알린 것일 뿐”이라고 했다. 법 개정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는 것과 개정 계획이 없다고 차단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사회적 합의” 운운은 책임 회피나 다름없다.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은 무엇이 다를까. 비동의 강간죄 법안은 20대 국회 때 10건, 21대 국회 때 3건 발의됐다. 22대 국회에선 아직 1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여성정책에 큰 관심이 없고, 민주당은 상대적으론 관심이 있어 보이지만 조금만 민감하면 발을 뺀다. 지난 총선 땐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공약에 담았다 철회했고, 최근엔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추진한 적도 없고, 추진하고 있지도 않다”는 한 의원의 문자메시지가 논란이 됐다. 선거가 닥치면 여성 유권자를 찾는 민주당은 정말 2030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이 있을까. 넥타이만 매면 다일까.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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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