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사회의 영웅, 캡틴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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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편집장

이주영 편집장

요즘 극장가에선 미국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흥행 중인가 봅니다. 압도적인 비주얼과 시원한 액션신이 볼 만하다는데요. 개인적으로 제 취향은 아닌데,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서울시내에 등장한 ‘캡틴 아메리카’ 복장의 남성 때문입니다.

중국대사관과 경찰서 난입을 시도하다 붙잡힌 이 남성은 자신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블랙요원이자 미군 예비역이라 주장했습니다. ‘계엄 당일 계엄군이 선관위 연수원에서 중국인 99명을 체포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매체의 취재원이 자신이라고도 했습니다.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 보도’는 윤석열 대통령 측이 탄핵심판 과정에서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거론하기도 했죠. 주한미군이 해당 보도에 대해 “모두 거짓”이라고 공식 부인한 내용을 대통령 변호인단이 언급한 겁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남성은 미국 국적도 아니며,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고 하네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각종 음모론과 허위 조작 정보의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과거 일부 온라인 카페나 단톡방 등에서 제한적으로 퍼졌던 가짜뉴스가 이제는 유튜브를 비롯한 SNS를 타고, 또 대규모 오프라인 집회를 무대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부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확성기 노릇을 자처하면서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사실 허위 조작 정보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중세 유럽에서 주로 비기독교인과 하층민 여성을 ‘마녀’로 지목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마녀사냥이 있었죠. 1923년 관동 대지진이 발생한 일본에서는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풀어 일본을 망하게 하려 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조선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이 진행됐습니다. 허위 조작 정보가 증폭시킨 특정 민족에 대한 혐오가 초래한 비극이었죠. 가짜뉴스의 오랜 역사를 보면 어쩌면 생존을 위해 내재된 인간의 사악한 본능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문제는 오늘날 가짜뉴스의 확산 속도와 그 폐해는 과거에 비해 너무나도 크다는 겁니다. 언론의 외피를 쓴 미확인 정보들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일상 곳곳에 침투하고 있죠. 알고리즘을 타고 흘러온 가짜뉴스와 혐오의 언어들이 시사 콘텐츠로 둔갑해 여론을 호도하고, 10대 청소년들에게도 노출돼 자연스레 극단적인 주장에 젖어들게 합니다. 계엄과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극단적 우파들이 핏대를 높이며 막말을 해대는 것이 마치 영웅적인 행동인 것처럼 돼버렸어요.

이번 주 주간경향은 극우란 이름으로 뭉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대체 어떤 이들인지를 집중 해부한 특집호로 준비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심층 인터뷰와 함께, 10대 남성 청소년들의 우경화에 무방비 상태인 교육 현장의 문제, 극우화 현상을 우려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극우 저지에 나선 시민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또 다른 나라의 극우화 흐름을 짚어보고 한국 극우의 특징, 폭력적 극우화를 연구한 전문가들의 인터뷰도 준비했습니다.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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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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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