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향미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유해성·중독성을 지닌 ‘담배’를 제조하는 담배회사들의 책임을 묻겠다며 지난 2014년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500억원이 넘는 소송가액, 국가기관이 원고로 나선 이 소송에 대해 11년 전 사회적 관심은 뜨거웠다. 지난 2020년 1심 결과는 건보공단의 패소. 이제 2심 일정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담배소송 쟁점 중 하나는 흡연과 질병 발병 간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다. 담배소송을 취재하면서 담배의 위험성을 의심하기란 어려웠다. 담배에는 4000여가지 화학물질과 70여종의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중독성을 보자면 마약과 다를 바 없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담배회사가 담배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렸는지 여부도 주요 쟁점이다. 담뱃갑 경고문구에 ‘폐암’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은 1989년. 소송 대상자들은 1960~1970년대 흡연을 시작한 이들이다. 다만 법정에서는 구체적이면서도 개별적인 피해에 대해 담배회사의 책임을 ‘입증’해야 이길 수 있다. 건보공단은 2심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와 추가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우리 몸이 세계라면>(2018)이라는 책에서 “담배회사는 죽음을 판다”고 썼다. 미국의 일화를 소개한다. 담배회사 알 제이 레이놀드 광고모델이었던 데이비드 괴릴츠는 1989년 미국 의회에 출석해 담배회사 사장과 나눈 대화를 증언한다. “왜 당신과 당신 동료들은 흡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사장은 “우리는 그 권리(흡연)를 젊은이, 가난한 사람, 흑인 그리고 멍청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다”고 답했다고 한다.
1994년 미국에서 담배회사의 내부문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담배회사들이 담배의 유해성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담배회사들의 고도의 마케팅 전략도 확인됐다. 담배회사들은 흡연율이 높은 성인 남성 외 여성과 어린이들도 공략했다. 1920년대 이후 여권 신장이 이뤄질 땐 흡연을 ‘평등의 상징’으로 내세웠고, ‘잠재적 흡연자’인 어린이·청년을 돕는 사회공헌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이 책에서는 국내 마케팅 사례도 소개한다.
흡연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한다. 흡연자들은, 적어도 1990년대 후반까지는, 정보의 비대칭·적극적인 마케팅 속에서 흡연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건보공단이 2심에서 제출한 증거자료와 보강한 논리가 담배회사의 책임을 묻기에 충분했을지, 2심 결과를 주목해볼 만하다. ‘흡연’에 관한 사회적 인식과 규제 제도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