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 얼마나 위험한 줄 모두가 알았을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김향미 기자

김향미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유해성·중독성을 지닌 ‘담배’를 제조하는 담배회사들의 책임을 묻겠다며 지난 2014년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500억원이 넘는 소송가액, 국가기관이 원고로 나선 이 소송에 대해 11년 전 사회적 관심은 뜨거웠다. 지난 2020년 1심 결과는 건보공단의 패소. 이제 2심 일정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담배소송 쟁점 중 하나는 흡연과 질병 발병 간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다. 담배소송을 취재하면서 담배의 위험성을 의심하기란 어려웠다. 담배에는 4000여가지 화학물질과 70여종의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중독성을 보자면 마약과 다를 바 없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담배회사가 담배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렸는지 여부도 주요 쟁점이다. 담뱃갑 경고문구에 ‘폐암’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은 1989년. 소송 대상자들은 1960~1970년대 흡연을 시작한 이들이다. 다만 법정에서는 구체적이면서도 개별적인 피해에 대해 담배회사의 책임을 ‘입증’해야 이길 수 있다. 건보공단은 2심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와 추가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우리 몸이 세계라면>(2018)이라는 책에서 “담배회사는 죽음을 판다”고 썼다. 미국의 일화를 소개한다. 담배회사 알 제이 레이놀드 광고모델이었던 데이비드 괴릴츠는 1989년 미국 의회에 출석해 담배회사 사장과 나눈 대화를 증언한다. “왜 당신과 당신 동료들은 흡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사장은 “우리는 그 권리(흡연)를 젊은이, 가난한 사람, 흑인 그리고 멍청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다”고 답했다고 한다.

1994년 미국에서 담배회사의 내부문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담배회사들이 담배의 유해성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담배회사들의 고도의 마케팅 전략도 확인됐다. 담배회사들은 흡연율이 높은 성인 남성 외 여성과 어린이들도 공략했다. 1920년대 이후 여권 신장이 이뤄질 땐 흡연을 ‘평등의 상징’으로 내세웠고, ‘잠재적 흡연자’인 어린이·청년을 돕는 사회공헌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이 책에서는 국내 마케팅 사례도 소개한다.

흡연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한다. 흡연자들은, 적어도 1990년대 후반까지는, 정보의 비대칭·적극적인 마케팅 속에서 흡연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건보공단이 2심에서 제출한 증거자료와 보강한 논리가 담배회사의 책임을 묻기에 충분했을지, 2심 결과를 주목해볼 만하다. ‘흡연’에 관한 사회적 인식과 규제 제도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취재 후바로가기

이미지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