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그립다, 길원옥 할머니 ‘홀로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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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벌써 그립다, 길원옥 할머니 ‘홀로 아리랑’

고백하자면, 기자가 되고 나서야 수요시위를 경험했다. 7년 전 처음 찾아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는 나흘 전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기정 할머니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길원옥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다시 꺼내 본 사진 속 할머니는 엉성하고 어설픈 앵글 안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이따금 찾는 시위 현장에서 할머니는 부채질하며, 때로는 두꺼운 목도리를 두른 채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 어릴 적 가수가 꿈이었던 할머니는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현장을 지켰다.

지난 2월 19일 찾은 수요시위 현장에는 길원옥 할머니의 노랫소리 대신 그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지난 2월 16일 향년 97세로 세상을 떠났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은 영정에 헌화하고, 묵념하며 할머니를 추모했다. 일부 시민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뷰파인더로 할머니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할머니가 즐겨 불렀던 ‘홀로 아리랑’이 시위 현장에 울려 퍼졌다. 시민들이 노래를 부르며 할머니의 뜻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영정 속 할머니의 미소가 그제야 보이는 듯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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