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시장 / 서울시 제공
세상이 나를 상대로 거대한 사기극을 벌이는 것 같은 때가 있다. 탕후루 가게가 우후죽순 생겼을 때도 그랬다. 그러잖아도 단것에 더 단것을 입혀 먹는다는 발상이 혼란스러웠다.
얼마 되지 않아 더 이해할 수 없는 유행이 덮쳤다. 짙은 ‘중국혐오(혐중)’다. 심지어 마라탕과 탕후루의 열기가 여전히 뜨거운데도 광범위하고 과격한 혐중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덮었다.
내 고향은 서울 자양동이다. 사람들에겐 ‘건대 앞’이라고 소개한다. 사는 곳을 말하면 10여 년 전엔 “아, 그 헌팅의 메카?”라는 말이 돌아왔다. 몇 년 뒤로는 “아, 그 양꼬치 유명한 곳?”이라는 반응이 많아졌다. 값싸고 맛있는 양꼬치를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건대입구역 앞에 들어선 이후다. 그게 좋았다. 헌팅은 안 해봤지만 양꼬치는 먹어봤으니까.
음식은 당연히 사람과 같이 왔다. 양꼬치 거리에선 중국어가 자주 들려온다. 중국어로만 된 간판도, 중국인을 위한 상점도 많다. 대표적 차이나타운인 대림동이나 가리봉동과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대림은 ‘중국인의 동네’ 같다면, 자양동은 ‘중국인과 한국인이 만나는 동네’ 같다.
이주민이 막 자리 잡기 시작하던 시절엔 새벽에 중국인끼리 칼부림이 벌어졌다든가 요즘 거리가 더러워졌다든가 하는 소문이 돌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자 선주민도 차츰 적응했다. 다종다양한 ‘중국당면’이나 마라소스를 살 수 있는 마트를 공유하고, 생일파티를 양꼬치나 훠궈집에서 열기도 했다.
논문 ‘한국계 중국인 밀집주거지의 분화에 관한 연구(방성훈 외)’에서 내가 느낀 분위기를 통계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가리봉동은 한국계 중국인의 초기 정착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단기 체류자, 1인 가구가 많다. 상점들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해 다소 폐쇄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자양동은 서울 다른 지역에 살다 이주한 이들, 한국 생활이 상대적으로 오래된 이들이 더 많다. 자녀 교육을 일반 공립학교에서 시킨다. 다른 곳으로 이주할 계획도 적다. 상점 고객 10명 중 7명 이상이 한국인이다.
이 ‘개방적 외국인 밀집거주지’에서 이주민과 선주민과의 접점은 점점 넓어진다. 어머니는 최근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센터엔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중국 출신인 아이들이 많다. 한국어가 서툰 아이도, 중국에서부터 한국어를 배워서 비교적 적응이 빠른 아이들도 있다. 국적 불문, 한국어 실력 불문 공통점이 있는데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거다. 연말에 한 번 아이들에게 엽기떡볶이를 사준 이후로 어머니는 꽤 오래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오만원 쓰고 너무 많은 인심을 얻었다며 민망해한다.
계엄 이후 혐중 정서가 짙어지면서 건너 들은 센터 아이들의 일상이 걱정됐다. 예전엔 중국인을 두고 ‘짱깨’라고 비하했다면, 이젠 누구에게든 ‘중국인’이라고 몰아가는 게 일종의 욕설이 돼버렸으니까. 이 시점, 진짜 중국에서 온 아이들은 괜찮을까.
떡볶이집에도 마라떡볶이, 찜닭집에도 마라찜닭, 아귀찜집에도 마라아귀찜이 있을 정도로 마라에 미친 세상과 한국에 온 외국인 관광객에게 “중국인이냐?” 물으며 선별하고, 헌법재판관도 의대생도 다짜고짜 ‘중국인’, ‘화교’로 몰아가는 세상이 같은 세상이라는 걸 믿을 수 없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