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신박한 자진 납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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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우리는 신념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대다수의 일은 그 반대에 가깝다. 1953년 6·25 정전협정 후 미군 포로 21명이 귀국을 거부하고 중국에 남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중국 공산당의 세뇌(brain-washing) 기법을 자세히 소개한 에드워드 헌터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포로들에게 공산주의 책자를 암기하고 토론하게 했고,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간단한 메모를 적게 한 뒤 담배·과자 같은 보상을 주었다. 그 결과 포로들은 하나둘 신념을 바꾸면서 신념에 찬 공산주의자가 됐다. 이 황당한 사건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신념과 행동의 불일치로 고통스러웠던 미군 포로들은 이미 일어난 행동을 돌이킬 수 없기에 신념을 바꾸는 방식으로 인지부조화를 해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월 19일 “민주당은 원래 진보정당이 아니다.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말했다. 이재명의 ‘보수선언’은 이른바 우클릭 행보에 따른 비판의 대응책이자 조기 대선에서 보수 유권자층을 흡수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양당의 중원 지향은 오랜 세월 반복돼온 지루한 답습이다. 이재명이 이 당의 전임자들과 달랐던 점은 어쨌거나 인지부조화를 인지했다는 점이다. 관념적으로는 서민과 약자를 돌보는 진보정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재벌,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옹호해온 민주당의 역사는 인지부조화 그 자체다. 이 당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불일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변명거리를 고통스럽게 외쳐댔다. 이재명은 자진 납세를 택했다.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에 대해 그러면 오른쪽 깜빡이를 켜면 되지 않느냐고 응수했다. 인지부조화의 고통을 관념을 바꾸는 방식으로 간편하게 해결한 것이다. 당의 관념과 실제가 합치돼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이재명의 자진납세는 정치적 채무이행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선물의 성격을 띤다. 이러한 대처 방식이야말로 이재명식 ‘실용주의’의 진수라 하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월 19일 “민주당은 원래 진보정당이 아니다.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말했다. 이재명의 ‘보수선언’은 이른바 우클릭 행보에 따른 비판의 대응책이자 조기 대선에서 보수 유권자층을 흡수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전회는 어디까지나 인지적 편안함이라는 이재명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지 사회적 의미를 부여해 논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정해진 경로로 달려온 기차에서 이제 와 노선 이름을 뭐라 부르든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오직 정파적 승리만을 추구하는 선거 기계가 돼버린 양당의 정치에서 보수냐 진보냐 하는 기표들은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이재명의 갑작스러운 ‘보수선언’ 역시 보수유권자 공략이라는 정치공학의 하위 수단으로 활용됐을 뿐, 자신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당의 실제를 그대로 둔 채 사전적 의미의 이념 지향을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지금 이 당의 지도부가 고민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쩌다 당이 맹목적 선거 기계가 됐는지 숙고하고, 공당의 기능을 회복할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하지만 안 하겠지.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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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