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 (45) 정년연장의 꿈과 임금피크의 벽](https://img.khan.co.kr/weekly/2025/02/21/news-p.v1.20250220.7c31f137328c40c39ffbf5039601be2f_P1.jpg)
근로자: “우리는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연봉을 깎습니까?”
회사: “임금피크제는 경영난 극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연령이 아니라 호봉을 기준으로 삭감된 것입니다.”
근로자: “신규 채용을 하지 않았고,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재원을 어디에 썼는지도 불분명합니다.”
회사: “정년연장 대신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이고, 연령차별이 아닙니다.”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높아진 임금을 감액하는 제도를 임금피크제라고 합니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아 월급을 삭감당한 근로자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임금피크제는 특정 연령에만 불리한 연령차별에 해당한다. ▲임금 삭감의 정도가 과도하고, 그에 대한 보완조치나 대상조치가 전혀 없었으며, 감액된 재원이 신입사원 채용에 쓰였는지 사용 목적도 불분명하다.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연령차별금지) 위반으로 무효이며, 미지급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반면, 회사는 이렇게 반격합니다. ▲임금피크제는 연령이 아니라 호봉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연령차별이 아니다. ▲임금 삭감 폭이 크지 않으며, 퇴직금 중간정산 기회 부여 및 의무 안식년제 도입 등 보완 조치를 마련했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이며,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5에서 규정한 “특정 연령집단의 고용 유지·촉진을 위한 지원조치”에 해당하므로 차별이 아니다.
대구고등법원은 최근 대구MBC의 임금피크제가 연령차별에 해당하며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는 40대 후반~50대 근로자들에게만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라고 보았고, 회사가 주장한 경영상 필요성도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임금 삭감이 이루어진 시기에도 회사는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한 해가 있었으며, 오히려 신규 채용 규모는 감소했습니다.
법원은 최대 60% 이상의 기본급이 감액됐고, 상여금과 퇴직금까지 연동돼 줄어든 반면 업무량은 그대로 유지돼 과도하다고 봤습니다. 의무 안식년제는 실질적인 보완 조치가 아니라 추가적인 인건비 절감 수단으로 판단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합리적인 이유 없는 연령차별이며,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위반으로 무효라는 판결이 확정됐습니다(대구고법 2024나10304: 대법원 확정).
특히 이 사건은 기존 정년(58세)을 유지한 채 임금을 삭감했고, 그 후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건인데, 회사의 주장과 달리 “특정 연령집단의 고용 유지·촉진을 위한 지원조치”(고령자고용법 제4조의5)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임금피크제가 쏘아 올린 갈등
임금피크제 관련 법정 분쟁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2022년 5월 26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이 내용은 2022년 노동법 새겨보기 12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를 참고해 주세요). 대법원판결 이후 임금 차액을 돌려 달라는 근로자의 소송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임금피크제 관련 민사소송은 선고 일자 기준 2019년 53건, 2020년 71건, 2021년 107건, 2022년 111건에서 2023년도 213건으로 매해 증가했습니다. 2024년과 2025년에는 더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소송(서울중앙지법 2022가단5221119: 확정, 창원지법 2022가단118855: 확정)에서 무효가 인정된 판결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정년연장형 판결도 역시 소수이지만 무효 판결도 선고되고 있습니다(서울남부지법 2023가단210186: 2024나2046898 사건으로 항소 중). 한편, 임금피크제 신설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 절차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무효라는 판결(대구지법 2021가합205418: 확정)도 존재합니다.
고령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돕는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임금피크제 시행 초기부터 노사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습니다. 이에 따라 임금피크제 폐지를 고려하는 기업도 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300명 이상 사업체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운용하는 사업체 비율은 2019년 54.1%에서 2022년 51%로, 100명 이상 사업체는 같은 기간 41.8%에서 39%로 줄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정년연장과 결합한 임금피크제 확대 논의는 더 많아질 것인데, 노사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사회적 비용 지출이 예상이 되므로,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정년 연장과 폐지, 재고용
정년을 연장하자는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돼왔습니다. 65세로 단계적으로 늘린다는 구체적인 합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술 더 나아가 정년을 폐지하자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미국은 연령차별고용법(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ADEA)을 통해 고용에서의 연령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1978년 개정으로 고용에서 은퇴연령을 강제하는 것을 금지하게 됐고, 1986년 개정에서는 고용 연령 상한을 철폐했습니다. 그 후 ADEA는 65세 정년을 폐지했으며, 연령에 따른 차별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영국은 2006년의 고용평등(연령) 규칙(Employment Equality (Age) Regulation)에 의해 연령차별을 금지했습니다. 이후 2011년 10월 1일부터는 정년을 폐지해 고용에서 은퇴연령의 강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대법원 노동법실무연구회, <근로기준법주해 II> 제2판, 331∼332면). 그 외에도 뉴질랜드(1999년), 호주, 캐나다(2000년대) 등에서 정년을 폐지했고, 유럽연합법원도 원칙적으로 연령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위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고용유연화(미국의 임의고용 제도·Employment- At-Will)가 높은 국가이기도 합니다. 정년 폐지를 통해 고령자 고용 촉진과 완전한 연령차별금지를 달성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정년제도를 보장하고 고용안정성을 추구하고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 좋은지 판단의 문제입니다.
정년제 폐지론은 ①정년제는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는 법체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 ②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 ③정년 폐지를 통해 고령층이 더 오래 일하면 연금 수령 시기가 늦춰지고 기여금 납부 기간이 늘어나 재정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 ④노년층의 일할 기회가 늘어나면 경제적 안정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립과 정신건강 문제도 개선된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합니다. 기업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현행법도 정년을 폐지하거나 연장하는 경우 “고령자 고용연장 지원금”을 증가 근로자 1명당 분기 30만원 최대 2년간 지급하고 있어 간접적으로 정년의 폐지 및 고령자 고용을 유도하고 있습니다(고용보험법 시행령 제25조). 아직은 소소하지만 이러한 법률적 지원은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재고용은 원칙적으로 종전의 근로관계를 일단 종료시키고 단절된 새로운 근로계약을 합의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65세까지 계속고용제도(재고용제도·근무연장제도 등)를 도입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정년제 사업장의 재고용제도 운영 비율은 2013년 25.7%와 비교해 10년 사이 10%포인트 이상 높아졌습니다.
고령층 고용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기업은 정년 연장보다 적은 부담으로 고령자의 숙련된 노동력을 활용하고, 근로자는 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무 재고용 연령’ 도입 방안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재고용 제도도 활용해 기업과 근로자의 선택 폭을 넓히는 것도 필요합니다.
정년·임피제와 관련해 사회구성원들이 깊이 있는 고민과 논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떠올려볼 만한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한용현 변호사 lawyer_h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