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디지털 기술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 정치학, 사회학, 정보과학을 아우르는 복합적 연구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공론장의 개념을 정립한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에 따르면 근대 민주주의는 신문, 잡지, 토론회 등을 매개로 시민들이 공적 사안에 대해 논의하는 공간에서 발전해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 공론장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전통적인 매스미디어 중심의 공론장과 달리,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공론장(Digital Public Sphere)’이 새롭게 형성됐는데, 이 공간은 여론의 생성, 확산, 왜곡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오늘날의 디지털 공론장은 단순한 정보 공유의 장을 넘어 여론을 형성하고 정치적 행위를 유발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온라인에서 여론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민주주의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가?
첫째, 알고리즘과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알고리즘은 특정한 정보가 사용자에게 노출되는 방식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SNS와 유튜브의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학습해 최적화된 콘텐츠를 제공한다. 그에 따라 동질적인 의견만을 증폭시키는 ‘반향실(Echo Chamber) 효과’가 발생한다. 즉 개별 시민이 정치적·사회적 쟁점에 대해 균형 잡힌 관점을 접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진다.
둘째, 소셜미디어의 즉각성으로 인해 감정이 여론을 지배한다. 소셜미디어가 기존의 매스미디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은 ‘즉각성’과 ‘감정성’에 있다. 기존의 공론장은 신문 기사, 토론, 학술적 논의를 거쳐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SNS 및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서는 감정적으로 강렬한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한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분노, 공포, 환희 같은 감정적 요소가 강한 정보에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이러한 감정은 공유 행동을 촉진한다.
셋째, 콘텐츠를 생산하는 걸 넘어 정보 조작자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공론장은 시민들에게 단순한 정보 소비자의 역할을 넘어 적극적인 콘텐츠 생산자의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적 참여가 반드시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악의적 허위정보로 여론 조작과 선동을 하는 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위험 요소로 등장했다. 또한 자동화된 봇(Bot)을 활용해 특정 이슈를 인위적으로 확산하거나,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여론을 조작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민주주의를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더욱 복잡하다. 알고리즘과 감정 중심의 네트워크 효과, 자동화된 조작 기술이 결합하면서 여론 형성 과정은 더욱 불투명하고 조작 가능성이 높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기술과 민주주의 관계는 양가적이다. 기술은 더 많은 사람에게 발언권을 부여하고 참여의 문턱을 낮추었지만, 동시에 담론의 질적 저하와 분열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디지털 기술의 민주적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그것의 위험성을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시민의식이다.
<류한석 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