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후퇴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실제로 연일 보도되고 있듯이 미국 행정부의 기조 변화는 상당하다. 먼저 미국 역내에서 기후 공시 제도 약화의 흐름이 보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자에 대한 공신력 있는 정보 제공을 위해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 등을 의무 공시하도록 하는 정보공개 제도인 기후 공시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지난해 3월 SEC가 강화된 기후 공시 의무화 규정을 최종 채택하자, 이를 반대하는 미국 경제단체 등이 다수의 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SEC는 그 시행을 보류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집권 이후 SEC 위원장 직무대행은 기존의 공시 규정으로도 기후 리스크 공시는 충분히 될 수 있어 새로운 규정 채택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앞으로 소송에서 방어도 하지 않겠다고 밝혀 향후 제도의 백지화를 시사하고 있다. 한편 SEC의 기후 공시 의무화 규정보다 강화된 내용을 담은 캘리포니아주의 기후공시법은 연방지방법원에서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또한 트럼프 정부는 연일 강한 관세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2월 4일 중국에 대한 10% 보편관세에 서명한 이후 2월 10일에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예외 없이 25%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의 경우 똑같이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발표 또한 곧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초당적 인프라 법(BI)으로 내수를 다져 인플레이션을 낮추고자 했다면, 트럼프는 노골적인 무역장벽을 세워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미국 내부의 제조업체에도 비용 부담을 가져오며,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가계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ESG 후퇴가 있더라도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 정부는 더욱 강력한 제도를 마련해 나갈 것이며, 주요국들은 탄소 규제라는 명분을 통해 미국에 대항할 것이다. 결국 미국이 후퇴한다고 해서 우리 또한 역주행할 상황은 아니다.
상대국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에 광범위한 무역전쟁을 촉발해 유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율도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으로 큰 타격을 받는 캐나다의 경우 유럽연합(EU)처럼 탄소 관세를 채택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조짐을 보인다. 트럼프 정부 또한 보편관세 대신 탄소세 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는데, 공화당에서도 해외오염방지법을 발의한 바 있다. 즉 자국 내에서는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탄소 규제가 자국 산업을 보호할 좋은 수단과 명분이 된다면 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ESG 후퇴가 있더라도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 정부는 더욱 강력한 제도를 마련해 나갈 것이며, 주요국들은 탄소 규제라는 명분을 통해 미국에 대항할 것이다. 결국 미국이 후퇴한다고 해서 우리 또한 역주행할 상황은 아니다. 탄소 장벽은 우월한 입지를 갖춘 선진국들의 주요한 무기가 됐으며, 글로벌 투자자들 또한 이 같은 제도에 기반해 투자를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