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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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농민이 몰고 온 트랙터가 2024년 12월 22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도착하자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농민이 몰고 온 트랙터가 2024년 12월 22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도착하자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성소수자가 연단에서 발언하는 것은 “더 큰 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지금, 맞지 않는다고 더불어민주당의 한 국회의원은 말했다. 그는 이대남(20대 남성) 지지자들이 불쾌감을 드러내며 집회에 오기 꺼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매번 선거 등 ‘대의’ 앞에 ‘사소한’ 것으로 치부돼 왔다. 대여 투쟁 땐 “함께”를 외치다가 한 국면이 해소될 때쯤 “나중에”를 말한다. 사실 이 의원의 말은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이대남 중에 성소수자는 없을까?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0월 종교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처리와 관련해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차별 때문에 취업, 가족 구성 등 먹고사는 문제가 막힌다”(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지적이 나왔다. 19년째 공전 중인 차별금지법을 관철할 전략도, 대안도 민주당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개별 의원의 추천이라지만 민주당이 노벨평화상에 반(反)이민자·성소수자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추천한 것도 당의 인권의식이 무뎌진 하나의 징후로 볼 수 있다. 정치권이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동덕여대 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시위에 이르게 된 맥락은 삭제하고 혐오만 키우는 동안, 제1야당 대표는 ‘입장 없음’으로 일관해 사실상 혐오에 힘을 실어줬다.

민주당은 차기 대선에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의 문제에 모호한 스탠스를 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근 지도부의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보수화됐다고 평가받는 2030 남성 등의 표를 얻느냐다. 0.73%포인트 차로 패한 지난 대선에서 이 대표 득표율은 마지막까지 부동층이던 20대 여성들이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으로 이 대표의 어정쩡한 태도에 실망한 적잖은 이들이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 투표하거나 기권을 행사했다. 이번엔 제3의 야당 후보의 유의미한 득표율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인권 문제는 후순위로 미뤄둬도 무방한 걸까.

윤 대통령과 지지자들을 필두로 여권은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에서 파면 결정을 내려도 불복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이 대선에서 큰 표차로 이겨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경제 살리는 야당의 면모를 보여주고, 지지 기반이 약한 유권자층을 포섭할 전략을 짜는 것 모두 공당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을 파악해 정책을 발굴하는 것도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기본사회’를 강령에 명시한 민주당이 할 일이다. 누군가 따져 묻는다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특례 논의에 민주당이 시간을 들였듯 설명하면 된다. 논리로 승부 보든, 감동적인 서사라도 만들든 설득하는 작업 역시 공당의 책임이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남태령”을 언급했다. 남태령에는 한국사회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한 문제들을 몸소 겪은 이들이 지역, 나이, 성 정체성 등에 관계없이 한데 모였다. 이들은 차별, 혐오, 배제로 상징되는 윤석열적인 모든 것과 헤어지자고 말한다. 사소한 것들을 방치한 결과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이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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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