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위험한 특종-언론 역사 새로 쓴 ‘테러 생중계’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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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날로그로 제작되는 방송프로그램이 어떠한지 사실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묘사한다. 특종을 위한 방송사 간 경쟁, 현장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갈등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목: 9월 5일: 위험한 특종(September 5)

제작연도: 2025

제작국: 독일

상영시간: 95분

장르: 스릴러

감독: 팀 펠바움

출연: 피터 사스가드, 존 마가로, 벤 채플린, 레오니 베네슈

개봉: 2025년 2월 5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며 떠올렸던 것은 지난해 12월 3일 밤,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양손에 비화폰을 들고 번갈아 가며 계엄을 지휘하는 모습이다. 본인은 심각했겠지만 상상해보면 뭔가 초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다. 다들 알다시피 그 시도는 실패했다.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이 묘사한 ‘1972년 9월 5일 새벽, 독일 뮌헨올림픽의 참사를 생중계한 미국 ABC 방송국의 현지 뉴스룸’이 그랬다. 이날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 ‘검은 9월단’은 이스라엘 올림픽 대표선수 5명, 심판 2명, 코치진 4명 등 총 11명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포로 234명 등의 석방을 요구했다.

1972년이다. 당연히 휴대전화도 없을 때다. 공중전화와 무전기를 동원한 총력 중계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정보는 스튜디오에 앉아 있는 앵커가 순발력 있는 설명으로 보충했다. 중계팀은 막 교체해 들어온 스포츠 담당팀이었다. 이렇게 쓰니 뭔가 엉망진창 스크램블 코미디처럼 느껴지겠지만, 영화 분위기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당시 독일어 통역 아르바이트생으로 방송국이 고용한 젊은 여성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는 중년 남성 간부 때문에 로컬 방송의 탈출자 인터뷰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ABC는 세기의 특종을 놓칠 뻔했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의 취재 분투기

미디어 역사 최초로 전 세계에 생중계된 이 테러 사건은 전 세계에서 약 9억명이 지켜봤다고 한다. ABC 방송 스튜디오는 마침 선수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물에 자리 잡고 있어 세기의 특종을 잡았다. 문제는 9억명의 시청자 중 검은 9월단 테러범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인질 사건이 발생하자 서독 경찰은 대테러팀이 아닌 일반 경찰서 강력계쯤에서 흔히 봄 직한 중년 형사 3~4명을 투입했고, 이러한 ‘작전’은 인질이 억류된 이스라엘 선수촌 아파트 TV에도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었다. 당연히 구출 작전은 실패. ‘검은 9월단’은 이스라엘이 억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포로와 독일 극좌 무장단체인 ‘바더 마인호프’의 두 지도자 석방을 요구했다. 요구 조건을 들어줬을까. 대치가 길어지면서 이들이 서독 당국에 다시 요구한 건 이집트로 망명을 위한 헬기 제공이었고, 그건 받아들여졌다. 이미 인질 2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9명과 이들 테러단의 비극적인 운명이 결정된 곳은 헬기에서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간 공항이었다.

세기의 특종을 한 이들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자축한다. 테러 생중계 방송 시청률은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때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자축할 일만은 아니다. ‘세기의 오보’도 남겼다. 공항에서 들려온 첫 소식은 인질 전원 구출이었다. 교차검증이 되지 않은 이 소식을 전할지 말지 고민하던 현장 지휘 데스크가 꺼내든 해법은 ‘전하는 말에 따르면’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이는 것이다. 맞아떨어지면 대박이었겠지만, 이 도박은 실패했다.

세계적 특종 뒤에 남는 역사적인 오보

영화는 아날로그로 제작되는 방송프로그램이 어떠한지 사실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묘사한다. 특종을 위한 방송사 간 경쟁, 현장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갈등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방송사별로 할당된 위성 송출 시간이 있어 CBS에 생존자 인터뷰 영상 중계 화면을 넘겨야 할 상황에 이르자 ABC 담당자들은 넘길 화면에 ABC 로고를 박아버린다. 영화는 97회 아카데미 각본상, 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작품상에 후보로 지명돼 있다.

뮌헨올림픽 참사와 연관된 두 영화

/유니버설 픽처스 코리아

/유니버설 픽처스 코리아

뮌헨올림픽 테러를 다룬 영화라면 가장 먼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2005)이 떠오른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을 보기 전에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 문제를 스필버그가 앞서서 워낙 묵직하게 다뤄놨기 때문에 더 건질만 한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기우였다.

스필버그의 <뮌헨>은 뮌헨올림픽 참사가 아니라 참사 이후를 다룬 영화다. 참사 이후 11명의 희생자에 맞춰 ‘검은 9월단’을 이끄는 수뇌부 11명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비밀 요원이 차례차례 찾아가며 암살하는 것이 골자다. <뮌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이었다. 끝없는 보복에 회의를 느낀 주인공이 뉴욕 맨해튼 건너의 한적한 공원에서 조직의 수장과 언쟁을 벌인 후 현장을 떠나는데, 그가 힐끗 쳐다보는 맨해튼 마천루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심한 듯 서 있다(사진). 무한 반복되는 증오와 보복이 결국 2001년 9·11 테러를 낳았다는 암시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을 보며 떠올린 또 한 편의 영화는 울리 에델 감독의 2008년작 <바더 마인호프>다. 영화는 나치즘에 대한 반성 없이 국가폭력으로 치닫는 서독 정부와 기득권에 저항하던 학생운동가의 시각으로 만들어졌다. 안드레아 바더는 좌파 학생운동 지도자, 올리케 마인호프는 그들에 동정심을 갖고 취재하던 좌파 언론인이다. 전 세계 피억압 민중의 동시 무장봉기로 세계해방이 가능하다고 믿은 이들은 국제연대 활동을 벌이다 감옥에 갇히는데 적어도 이들의 눈에 비친 서독 정부는 위선적이고 가면 쓴 파시스트였다고 영화는 주장한다. 두 영화 모두 훌륭한 영화고 보고 나면 할 말이 많아지는 영화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을 보고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면 한 번쯤 찾아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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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