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splash, Tim Marshall
나는 내가 둘이다. 그 하나는 내가 아는 나다. 다른 하나는 남들이 아는 나다. 이 둘은 일치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나보다 남들이 아는 내가 더 나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신입사원 때 첫 번째 맡겨진 일이 그 회사 역사를 책으로 쓰는 일이었다. 개발새발 썼는데, 나는 책을 쓴 사람이 됐다. 내가 아는 나는 글을 못 쓰는데, 사람들은 내가 글을 잘 쓴다고 했다. 그런 연유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글을 쓰게 됐고, 김우중 회장 글을 썼다는 이유로 김대중 대통령의 글을 쓰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글을 쓸 기회도 그렇게 주어졌다. 이 과정에서 실제 내 글쓰기 실력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아느냐가 중요했다. 나에 대한 남들의 인식과 평가가 나의 행로를 결정했다.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면 나는 잘될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잘될 수 없었다.
부모님을 비롯해 선생님, 직장 상사 모두 내게 기대를 했다. ‘너는 이래야 한다’, ‘너는 이럴 것이다’ 그런 기대는 늘 나의 역량을 초과했다. 나보다 나은 나를 기대한 것이다. 시간을 들여 기대치를 충족해내면 ‘그래, 되잖아. 너는 그렇다니까?’ 그러면서 더 높은 기대치를 제시했다. 더, 더, 더. 더욱더! 그렇게 나는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리 살다 보니 원래의 내가 나인지, 남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내가 나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이끌려 내가 아닌 나로 살았다.
나답게 살지 못한다는 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그것은 수지맞는 장사다. 나보다 나를 더 높게 쳐주니 항상 이익이다. 실제 가치는 얼마 되지 않는데, 시장에서 내 가치를 높게 쳐주는 것이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장도 한다.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실제로 내 실력이 올라간다. 어디 그뿐인가. 기대를 충족해주는 나를 사람들은 소개하고 추천해주며, 발탁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입신양명(立身揚名)한다.
평판은 관계의 출발점이면서 종착점
내가 서울에 올라온 게 1982년이었고, 이즈음 서울 사람 가운데 나를 아는 사람은 열 명도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를 쓰겠는가. 누군가는 나를 알아봐 주고 끌어줘야 내가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서울 생활 40여 년은 나를 아는 사람을 늘려온 역사이자, 나에 대한 남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몸부림쳐온 과정이다.
평판은 나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다. 사람은 누구나 좋든 싫든 타인의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주변의 평가에 신경 쓰며 살 수밖에 없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평판이란 어쩌면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평판은 관계의 출발점이면서 종착점이라 할 수 있다.
후배가 있었다. 당차고 의젓했다. 자기 몫은 늘 반듯하게 해냈다. 다만 입바른 소리를 잘했다. 윗사람들은 그를 못마땅해했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교정 일을 하던 그가 실수를 저질렀다. 아무개 대통령을 아무개 대령으로 표기한 것을 걸러내지 못했다. 군부 출신 ‘대통령’을 ‘대령’으로 강등시킨 것이다.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일벌백계해야 한다며 퇴직 처분을 내렸다. 이 같은 처분이 부당하다며 노동 관계기관에 이의를 제기해 몇 개월 만에 회사로 돌아왔지만, 이후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회사 조치에 항명했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런 평판에 갇혀 승진에서도 번번이 누락되는 수모를 겪으며 직장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평판은 힘이 세다. 사람들이 내가 그렇다고 하면 나는 그런 사람이다. 물론 이런 평판을 무시하고 살 수 있다. 아내가 그렇다. 세상이 아직 자신을 모른다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아내 말도 맞다. 평판이 늘 옳은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그다지 관심도 없다.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평판을 즐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평판이 잘못됐다고 한탄할 수만은 없다.
탈무드의 말처럼 ‘평판이 최고의 소개장’이 되는 시대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자신의 평판을 의식하고 살펴야 한다. 우리는 산에 오를 때 그 산을 온전히 볼 수 없다. 산에서 떨어져 나와 멀찍이서 바라보아야 봉우리는 몇 개이고, 능선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증권사에서 일할 때도 주식의 내재가치보다는 투자자들이 그 주식을 얼마나 사는지 거래량을 봐야 한다고 배웠다. 나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 평판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평판은 나를 보여주는 ‘사회적 거울’이자 남이 씌워주는 월계관과 같다. 어떻게 해야 영광의 월계관을 머리 위에 쓸 수 있을까.
진솔하고 정직한 태도는 좋은 평판의 기본
진솔하고 정직한 태도는 좋은 평판의 기본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변명하지 않고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상사나 동료가 제시하는 의견을 적극 반영해 자신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나아가 누군가 어려움을 겪을 때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면 주변에 좋은 에너지를 전파하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호감을 얻을 수 있다. 전문성과 실력도 갖춰야 한다. 자기가 맡은 일을 등한시하며 좋은 평판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아는 선배는 ‘점심값은 모두 내고, 아는 사람의 상가에 모두 가는’ 이 두 가지만 일관되게 하면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평판을 쌓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다. 하지만 평판은 유리그릇 같아서 깨지기 쉽다. 좋은 평판을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은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는 고작 5분이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나빠진 평판을 만회하는 데는 갑절의 노력이 필요하다. 평판이 나빠진 이유를 성찰하고 잘못이 있다면 이를 인정하는 것이 평판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나아가 나쁜 소문이나 오해를 방치하지 말고 사실관계를 명확히 설명하고,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통해 나쁜 평판 극복 과정을 자기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지금 자신의 평판은 어떠한지 생각해보자. 가령 좋지 못한 평판을 얻고 있다면 좋은 평판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를 생각해본다. 그땐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았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살면서 그토록 물고 늘어졌던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할 리 없다. 모든 게 허망할 뿐.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느냐 여부다.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그게 전부다. 삶은 유한하고 기억은 영원하다. 이 세상을 뜬 사람의 기억은 만회할 기회조차 없다. 잠시 무엇이 되어 살다가 영원히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아무것도 못 됐지만, 두고두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는 좋은 사람이었어”라는 한마디 이상의 인생 훈장이 있을까.
<강원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