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해군의 36년 꿈’ 기동함대 창설···화룡점정은 경항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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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3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제주해군기지 복지관 강당에서 해군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지난 2월 3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제주해군기지 복지관 강당에서 해군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한국 해군의 숙원이던 기동함대사령부(기동함대)가 제주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지난 2월 1일 창설됐다.

기동함대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위한 해상기반 한국형 3축 체계(킬체인-한국형 미사일 방어-대량 응징 보복)의 핵심부대이자 국가 생명줄인 해상교통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기동성이 뛰어난 기동함대는 수상·수중·공중의 표적을 원거리에서 조기 탐지하고, 긴 사거리의 대함·대공·대잠·대지 무장으로 타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기동함대는 구축함 10척과 군수지원함 4척 등이 주요 전력이다. 정조대왕함급(8200t)·세종대왕함급(7600t) 이지스 구축함과 충무공이순신함급(4400t) 구축함 등으로 이뤄진 71·72·73기동전대와 소양함 등 군수지원함으로 구성된 77기동군수전대, 육상 기지방호 및 지원 임무를 맡는 1개 기지전대 등 5대 예하 부대가 있다. 정조대왕함이 기동함대의 기함(지휘함)이다.

기동함대는 동·서·남해를 각각 담당하는 해군 1·2·3해역함대와는 별도로 그때그때 임무와 역할에 따라 모든 해역에서 활동한다. 해군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억제’, ‘대한민국 해양권익 보호’, ‘해상교통로 보호 및 해외 파병’ 등이 주요 임무라고 밝혔다. 유사시에는 압도적 전력으로 북방한계선(NLL) 등 임무해역에 투입돼 해양우세권을 달성하고, 북한 탄도탄 등 미사일을 조기 탐지 및 요격하는 대탄도탄작전을 수행하기도 한다. 장거리 타격 능력을 바탕으로 핵심표적에 대한 정밀타격 등도 맡는다.

■대양해군의 상징

해군은 1989년 합동군사전략목표기획서(JSOP)에서 한반도 해양안보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겠다며 연안해군을 벗어난 전략기동함대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1995년 안병태 제20대 해군참모총장이 취임사에서 ‘기동함대 체계를 갖춘 대양해군 건설 준비’를 밝혔고 이듬해인 1996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기동함대가 포함된 ‘해군력 개선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김영삼 정부는 1998년 1월 한국형 구축함 사업(KDX-Ⅱ) 예산 전액을 삭감해야만 했다. 이후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이 KDX-Ⅱ 사업 재개 결정을 내리면서 대양해군의 기초가 된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과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은 건조될 수 있었다. 해군은 2010년 2월 기동함대의 모체인 제7기동전단을 창설하기에 이른다. 주요 임무는 대탄도탄 작전 및 청해부대 파병 등이었다.

먼바다에까지 전력을 투사하겠다는 해군의 ‘대양해군’ 구호는 2010년 3월과 11월에 각각 일어난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위기를 맞았다. “연안도 못 지키면서 무슨 대양해군이냐”는 비판이 육군을 중심으로 나오자 해군은 ‘대양해군’이란 용어 사용을 중지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까지 “군이 현실보다 이상에 치우쳐 국방을 다룬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해군도 북한의 기습 도발에 대비한 전력을 먼저 확보하는 ‘연안해군’ 전략으로 전환했다. 차기 호위함 2차 사업이 해역함대(연안함대)의 주력이 될 수 있는 대구급(FFG-Ⅱ) 건조로 결정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미사일 대신 유도 로켓을 장착한 210t급 차기 고속정(PKMR) 대량 건조가 승인된 것도 이때였다.

해군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식이 열린 지난 2월 3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제주해군기지 정문에서 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동함대 사령부 창설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군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식이 열린 지난 2월 3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제주해군기지 정문에서 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동함대 사령부 창설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양해군’이란 해군의 구호가 다시 살아난 계기는 2011년 1월 아덴만 여명 작전이었다. 해군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던 삼호주얼리호 한국 선원들을 성공적으로 구출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의 성공은 과거 정부 10년 동안에 꾸준히 해군 전력을 증강한 데 힘입은 바가 컸다. 인질 구출작전에 나선 청해부대 최영함 등 한국형 구축함 6척이 앞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건조되지 않았으면 인질 구출 작전은커녕 청해부대 파병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해군 청해부대의 아덴만 작전 성공이 정부 지지율까지 올리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2012년 2월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다시 ‘대양해군’을 언급하며 제주해군기지 건설 추진 의지를 확인했다. 제주기지를 대양해군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해군은 기동전단 출범 이후 15년 만에 기동함대를 창설했다. 2010년 제7기동전단 창설 당시 규모와 견줘보면 1개 기동전대와 1개 기동군수전대 등이 증편됐다. 주력 함정 수는 7척에서 2배인 14척으로 늘었다.

■경항모 지휘함

한반도와 동아시아 해역은 미·일·중·러 등 강대국 해군의 각축장이다. 10여 년 전부터는 서해를 내해화하려는 중국 해군이 한층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기동함대 구축은 중국과 관련한 전략적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는 차원이기도 하다. 나아가서 향후 기동함대의 기함을 경항모로 하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는 ‘해상 전방위 안보 위협’에 대한 주도적 대응 차원이다.

이미 일본 해군은 경항모 2척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경항모로 개조한 일본 해상자위대의 이즈모·가가함에 F-35B 스텔스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할 계획이다. 이미 가가함에서 F-35B를 착륙시키는 시험을 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경항모는 급팽창하는 중국 해군과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또 북한에 대한 원거리 전력 투사 가능성도 고려했다. 사이토 아키라 일본 해상막료장은 경항모 체제에 대해 “스탠드오프(원거리 타격) 방위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정보 수집과 경계·감시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은 총 42기의 F-35B를 운용할 계획이다. 다만 선제공격 논란을 피하기 위해 F-35B를 항공자위대에 배속해 경항모에 상시 탑재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헌법을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면 먼저 도발할 가능성이 큰 곳이 독도 해역이다. 2018년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저공 위협비행’은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이 한국에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시사한 사건이었다.

한·중 해군은 서해에서 124도 E선을 놓고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24도 E선이 군사활동 경계선으로 굳어지면 서해 대부분이 중국 바다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해양권익’ 패싱(무시)이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 해군은 124도 E선보다 훨씬 먼 123도 E선 주변 바다에서 주기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함정은 한국 함정을 따라다니며 밀착 감시하고 있다. 한국 함정에 근접해 언제 위협을 가할지 모르는 형국이다. 중국은 서해를 군사적 안전해역으로 확보하기 위해 이곳에서 매년 대규모 해군연습을 정례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유엔 해양법을 무시하고 이어도 문제를 영토 분쟁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30년이면 중국 항모는 5~6척으로 늘어난다.

한국 해군도 경항모를 기동함대의 지휘함으로 배치하는 게 주변국의 전략적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합리적 대안이다. 함재기는 꼭 F-35B가 아니어도 된다. 해상 공중작전 혁신과 항공 과학기술 발전 등을 고려하면 무인기로 대체할 수 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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