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가 한국에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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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후] CES가 한국에 던진 질문

지난 1월 10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의 주인공은 인공지능(AI) 로봇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양한 술을 제조하는 바텐더 로봇, 사람을 돌보는 감성 로봇, 가사를 돕는 집사 로봇 등 각양각색의 로봇이 등장했다. 지금까지의 로봇은 공장 같은 정형화된 공간에서 특정 작업을 반복하는 자동화 설비 기기에 불과했다. 이제 AI 발달로 영화 속에만 존재하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이하 휴머노이드)이 일상에서 구현되는 시대가 개막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는 세계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가 지난해 32억8000만달러(약 4조7000억원)에서 2032년 660억달러(약 95조원)로 성장하리라 추정했다. 연평균 성장률만 45%에 달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CES 2025 기조연설에서 “로봇을 위한 챗GPT 순간이 오고 있다”며 AI의 궁극적인 미래를 로봇 같은 물리(Physical) AI라고 선언했다. AI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서는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휴머노이드가 생산 현장에 시범 투입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휴머노이드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 스마트폰 탄생에 버금가는 파급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생태계와 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비해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은 이번 CES에서 저마다의 비전을 제시했지만 한국의 청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첨단기술의 혁신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국가 차원의 고민이 더디다. 지난해 12월 시장조사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은 AI 분야에서 한국을 5개 선도국(미국·중국·캐나다·싱가포르·영국) 뒤에 있는 ‘2군’으로 분류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생성형 AI 대열에서 한국이 낙오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국회는 올해 예산안에서 AI 컴퓨팅 지원 예산 3217억원 증액을 무산시킬 만큼 기술 경쟁력 확보에 무관심하다. 한국이 뒤처지는 사이 세계 IT업계는 ‘양자컴퓨터’라는 또 다른 게임체인저의 등장을 맞았다. 첨단기술이 곧 국가안보가 되면서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안목과 이를 국가 발전 동력으로 만드는 국가 차원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기회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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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