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로 만나는 다시 찾은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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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 지난 1월 24일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정사업본부 지난 1월 24일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도난이나 약탈, 거래, 또는 선물 등 다양한 이유로 한국 땅을 떠난 소중한 유산들이 있다. 바로 국외소재문화유산이다.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초 기준으로 29개국 803개 처에 24만6304점의 국외소재문화유산이 있다. 일본에만 약 44.6%(10만9801점)의 한국문화유산이 있고, 미국(26.5%), 독일(6.37%), 중국(5.28%), 영국(5.20%)에도 1만여점이 넘는 유산이 떠돌고 있다. 이외에도 그리스, 카자흐스탄, 호주 등에서도 우리 유산을 볼 수 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14년 15만6160점이었던 해외유산은 10년 만에 9만점가량이 늘었다. 해외에 있는 유산을 계속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수한 문화유산의 수는 이보다 훨씬 적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012년 7월에 설립돼 지난해 8월 말까지 1210건 2492점을 국내로 환수했다. 대체로 기증을 받거나 경매, 혹은 매입을 통해 돌아왔다. 예산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어렵게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이 같은 국외 환수 문화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1월 24일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이번 기념우표에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과 ‘척암선생문집책판’, ‘대한제국 고종황제어새’, ‘한말 의병 관련 문서’가 담겼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고종이 하사한 내탕금(임금의 개인 재산)으로 사들였던 미국 워싱턴에 있는 건물로 1889년 2월부터 1905년까지 16년간 대한제국 공사관으로 쓰였다. 이후 일본이 푼돈으로 강제 매입한 뒤 미국인에 매각했는데, 2012년 국가유산청이 매입한 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위탁 관리하고 있다.

‘척암선생문집책판’은 항일의병장으로 1990년 대한민국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척암 김도화 선생(1825∼1912)의 문집 책판이다. 1917년 척암 문집을 찍기 위해 제작했던 1000여장의 책판 중 한 장이다. 2019년 독일의 한 경매에 출품된 사실을 재단이 확인한 뒤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로 유명한 라이엇 게임즈의 기부금으로 환수했다. 환수 책판은 국내에 소장된 동일 문집 책판 20장과 함께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고 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어새’는 고종이 일본의 국권 침탈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와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등에 보낸 비밀 친서에 사용한 국새다. 2009년 국립고궁박물관이 매입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같은 해에 보물로 지정됐고,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한말 의병 관련 문서’는 통문, 고시, 전령, 서신 등 총 13건의 문서로, 두루마리 2개로 배접한 형태로 구성돼 있다. 이 문서는 13도 창의군 관련 서신을 포함해 한말 의병 활동, 일제의 의병 탄압 행위, 불굴의 항전 의지 등이 담겼다. 지난해 7월 복권기금으로 일본에서 매입해 한국으로 돌아왔고,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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