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부부 향한 국회 특검법안 변천사…특검 임명 이미 실기
민주당 특검 밀어붙이다 후폭풍으로 정쟁 절반의 책임 떠안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강제구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힌 지난 1월 20일 공수처 차량이 윤 대통령이 수용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들어가고 있다. 성동훈 기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 윤석열 정권을 향한 ‘특별검사’ 임명은 열 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 나무에 해당한다. 여러 차례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안이 가결됐지만, 지금까지 특검은 단 한 명도 임명되지 않았다.
야권은 지금까지 내란 행위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안(2회·상설특검안 1회)을 비롯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의혹 관련 특검안’(4회),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은폐 관련 특검안(3회)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최상목 권한대행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뒤 국회 본회의에서 모두 8차례 재의안이 부결됐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설특검은 최 권한대행이 1월 중순까지 특검 후보자 추천을 의뢰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 1월 17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내란 행위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안’이 또다시 가결됐다. 이전과 다르다면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따로 특검법안을 발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 협상은 결렬된 채 야당 주도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예전처럼 최 권한대행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요구했다. ‘국회 본회의 의결→재의요구안 행사→국회 본회의 재의안 부결’이라는 절차를 반복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 때문에 ‘내란 특검은 이번에도 물 건너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내란, 검찰 공소 유지에 맡기는 게 최선”
이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의 공동수사본부(공수본) 그리고 검찰이 내란 혐의 사건을 수사해 일정 부분의 성과를 거뒀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주요 혐의자들을 구속했고,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윤 대통령을 체포한 후 구속했다. 국회에서는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에서 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진상조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헌법재판소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탄핵 심판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관심은 헌재의 탄핵 심판에 온통 쏠려 있다. 현직 대통령이 직접 증인으로 참석해 변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수사에는 협조하지 않고 있다. 체포 구속된 이후에도 공수처에 진술거부권(묵비권)을 행사하고, 조사에 불응했다. 윤 대통령 강제구인과 대통령실 압수수색이 모두 허탕으로 돌아가면서 공수처 수사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급기야 공수처는 지난 1월 23일 검찰에 사건을 이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과 경찰의 경쟁적 수사→공수처와 경찰의 합동수사→검찰 이첩’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작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 의혹에 대한 실체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특검 임명에 이미 실기를 해버린 민주당 등 야권으로서는 안타깝기가 그지없는 상황이다. 국회 국정조사특위와 언론 등에서 일부 중대한 의혹이 하나둘씩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현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건넨 계엄 관련 쪽지 아래쪽에 적혀 있던 숫자 ‘8’의 의미도 수사기관이 풀어야 할 과제다. 정지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변호사)은 “시간적으로나 실현 가능성으로 보나 내란 특검은 실효성을 상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이제 중요한 것은 윤 대통령 내란죄 혐의에 대한 공소 유지인데 어마어마한 인력과 노하우가 필요하다”면서 “소규모 상설특검으로는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결국 검찰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지난 1월 17일 여야 특검안 협상 과정에서 국민의힘에 최대한 양보해 합의안을 끌어냈어야 한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한 관계자는 “여당의 내란 선전·선동죄 제외, 외환 유도 사건 제외를 받아줬는데, ‘관련 사건 인지 수사’ 부분도 양보를 못 할 이유가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매번 과반 의석을 동원하는 강경한 안만 국회에서 통과시키다 보니, 결국 특검법안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와 한 명의 특검도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강공의 연속이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 정체,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 추세 같은 기이한 현상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검에 관한 한 지혜로운 선택해야
일선 검사였던 윤 대통령을 일약 스타로 만든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이어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르던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정치적 미아로 낙마시킨 일명 ‘드루킹 특검’도 특검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줬다. 이 특검은 모두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안으로 탄생했다.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명예교수(전 국회의원)는 “여야가 합의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특검은 불가능한데 야당이 의석수로만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이렇게 설혹 이뤄지더라도 누가 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특검을 하려고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김건희 여사 특검안과 채 상병 특검안은 정치권에서 후순위로 밀려났다. 정 위원장은 “지금 윤 대통령 관련 내란죄 혐의 수사와 헌재 심판이 중요한데, 국민의 독특한 정서를 감안할 때 김건희 특검으로 대통령 부부를 모두 구속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검을 윤 대통령과 여권을 공격하는 정치적 목적과 실제로 특검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려는 사법적 목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상돈 교수는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특검에 대해 지연 작전을 계속 펼치는 것으로 몰아가고 싶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목적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공수처와 검찰의 내란죄 혐의 수사 과정에서 ‘내란 행위의 배경에 김 여사 특검법’이 있다는 주장도 이와 부합한다. 야당의 김 여사 특검법 공세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한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정지웅 위원장은 “민주당이 정무적 관점에서 특검을 계속 밀어붙임으로써 일정한 효과를 거두긴 했으나 국회는 무한 정쟁에 빠지고 이제 절반의 책임은 민주당에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윤 대통령 기소와 헌재 결정 이후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는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특검에 관한 한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