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로봇 산업, 미·중 이은 세계 3강 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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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디지트 / 애질리티 로보틱스 홈페이지 캡처

미국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디지트 / 애질리티 로보틱스 홈페이지 캡처

지난 1월 10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이하 휴머노이드)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화제가 된 이 휴머노이드들의 움직임은 자율적인 게 아니었다. 리모트 컨트롤(원격조종)에 따르거나, 미리 프로그래밍이 된 움직임이었다. 중국 항저우에 있는 기업 유니트리의 현란한 이족보행 로봇 G1도, 역시 항저우에 있는 딥로보틱스의 바퀴 달린 4족 로봇 산마오(중국어로 야생고양이)의 다소 좌충우돌하는 움직임도 모두 원격조종이다.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디지트는 독일 셰플러 부스와 미국 액센추어 부스에서 창고 작업 기능을 시연했다. 반복적이고 체력 소모가 큰 작업을 대신 수행함으로써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텍사스주 오스틴 소재 앱트로닉의 휴머노이드 아폴로는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의 부스에서 시연했다. ‘눈’에 내장된 카메라가 고급 시각 인식 기능을 갖추고 있어 생산 시설에서 부품과 구성품의 검사, 정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유니트리의 G1이나 딥로보틱스의 산마오는 대규모 언어모델(LLM)이 내장되지 않아 사람의 말을 듣고 복잡한 행동을 수행하기 어렵다. 이들 로봇은 주로 시각적 데이터나 사전 정의된 작업에 따라 일한다. SPR(특수 목적 로봇)이라 부를 수 있는데, 중국은 이번 CES 2025에 SPR만 몇 개를 내놨다.

중국의 인공지능과 기술 수준 무시 못 할 상황

중국은 베이징에서 2025년 4월에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마라톤을 개최한다. 베이징 다싱 지역에서 열리는데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하프 마라톤에 함께 참가한다. 약 1만2000명의 인간 참가자와 수십 대의 휴머노이드가 경쟁할 예정이라고 한다. 참가 로봇은 인간과 유사한 형태로 이족 보행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바퀴가 있는 로봇은 참가할 수 없다. 원격조종 로봇과 완전 자율형 로봇 모두 참가 자격이 있으며 배터리는 경주 중 교체가 가능하다.

오는 8월에 베이징에서는 ‘세계 휴머노이드 스포츠 게임(World Humanoid Robot Sports Games)’이라는 스포츠 이벤트가 개최될 예정이다. 주요 종목에 육상, 축구, 종합 기술 및 응용 시나리오가 포함된다. 중국이 로봇 공학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앞서 로봇 축구 대회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최했다. 1996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김종환 교수가 주도해 대전에서 열린 마이로솟(MiroSot·마이크로 로봇 축구 대회)이 세계 최초의 로봇 축구 대회다. 2024년 8월에는 브라질에서 개최됐다. 일본에서는 1997년에 ‘로보컵’이라는 또 다른 국제 로봇 축구 대회가 시작됐다.

한국과 일본이 경쟁적으로 해왔던 로봇 축구 세계 대회를 이제 중국이 여러 종목을 다루는 올림픽 형태로 주도하려고 한다. 한국의 관심과 대응이 필요하다.

CES 2025에서 산마오가 시연할 때 위험한 장면이 여러 번 발생했다. 딥로보틱스는 자사의 로봇이 매우 민첩하고, 계단 등을 매우 빠르게 오르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부분을 강조하려고 상당히 빠르게 움직이는 시연을 보여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한 여성 관객과 산마오가 부딪힐 뻔했다.

1987년 개봉한 미국 영화 <로보캅>의 첫 장면은 다음과 같다. 로봇회사 OCP 이사회에서 경찰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 ED-209의 시연을 위해 직원이 테스트용으로 제공된 권총을 들고 앞에 서게 되는데, 로봇은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하며 경고한다. 직원이 즉시 권총을 바닥에 내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ED-209는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경고를 반복한다.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로봇은 갑자기 공격 기능으로 전환된다. ED-209는 자동 기관총을 발사해 직원을 무참히 살해한다.

유니트리는 로봇 G1과 H1이 원격 조종 없이 AI 기반 동작 제어 알고리즘을 사용해 자율적으로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기계학습을 통해 복잡한 지형에서의 균형 유지, 장애물 회피, 효율적인 경로 탐색과 같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는 넘어지지 않고, 부딪히지 않고, 목표 장소를 줬을 때 경로 탐색을 최적화하는 알고리즘이 있다는 것이지 다양한 작업을 자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즉 동작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지 목표를 주거나, 상호작용 가운데에서 자율적으로 운용되는 로봇은 아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 보스턴 다이내믹스 캡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 보스턴 다이내믹스 캡처

한국, 미·중은 물론 유럽·일본 사이 끼어 있어

한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같은 회사들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 있다. 유니트리의 G1, 딥로보틱스의 산마오와 달리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는 아직 제품의 가격도 책정돼 있지 않다. 즉 대량생산 대량판매 모델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의 로봇회사는 이렇게 한국에 앞서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인수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산업용 로봇과 협동 로봇(Cobot) 역시 저가의 중국 제품과 고가의 유럽·일본 제품 사이에 끼어 있다.

휴머노이드 멜로디와 아리아는 리얼보틱스가 CES 2025에서 공개한 첨단로봇이다. 둘 다 고급 AI와 센서를 탑재해 대화, 상호작용,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 사용자와의 소통을 통해 동반자 임무를 수행한다. 사용자는 멜로디와 아리아의 얼굴, 체형, 외모를 개인 취향에 맞게 변경할 수 있다. 리얼보틱스의 모회사는 어비스 크리에이션즈다. 199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설립된 회사로, 사실감을 극대화한 실리콘 전신인형(리얼돌) 제작으로 유명하다. 고품질의 맞춤형 인형 제작 기술과 독점적인 실리콘 피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초기에는 단순히 사실적인 마네킹 제작에서 시작했으나, 고객의 요구에 따라 AI 기술을 추가한 제품으로 확장됐다.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의 인트봇은 나일로라는 로봇을 출품했다. 일상 대화, 속어 사용, 몸짓, 표정, 눈 맞춤, 미세한 표정 변화 등 자연스러운 인간적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목표로 한다. 엔비디아의 코스모스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됐다. 코스모스는 물리적 AI 시스템 개발을 지원하는 오픈 라이선스 플랫폼으로, 로봇의 동작 생성과 고급 AI 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AI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학 교수는 힘센 국가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최소한의 저지 장치는 ‘국민이 다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봇이 발전해, 즉 국민이 다칠 위험이 줄어들면 힘센 국가들이 더 전쟁을 선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 전 세계의 로봇 발전은 전쟁 무기의 발전으로도 연결된다. 국방을 위해서도 로봇 산업 역시 미·중에 이은 세계 3강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빅데이터 응용학과·첨단기술 비즈니스 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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