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윤경 기자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다가, 시장에 가다가, 다리 밑에서 놀다가 유괴당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가족과 생이별한 채 부랑인 수용시설에 끌려간 이 아이들은 군대식 생활을 강요받으며 강제노역을 해야 했습니다. 구타와 폭력, 성폭행이 난무하는 이곳에서 법정 의무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했습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형제복지원 이야기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의아했습니다. 이곳의 실상이 알려진 것은 민주화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던 1987년이었습니다. 그해 검찰은 형제복지원장 박인근을 특수감금, 횡령 등 혐의로 축소 기소했습니다. 이후 법원에선 그중에서도 횡령 혐의만 인정돼 겨우 2년 6개월 형이 선고됩니다. 군부정권의 비호 속에 이루어진 극악무도한 인권유린에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졌는데 대중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민주화 운동 주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1987년 하면 박종철, 이한열은 떠올리지만 형제복지원에서 죽어간 수많은 아이들은 떠올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형제복지원 사건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피해당사자들 덕분입니다. 한종선씨와 최승우씨 등이 국회 앞에서 삭발, 단식, 노숙농성을 이어가며 수년간 싸운 결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출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벽’입니다. 진실화해위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 국가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버티며 2차 가해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피해자들도 지쳐갑니다. 아니, 사라져갑니다. 지난 1월 13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창한씨가 암 투병 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국가배상 청구 소송 중 사망한 피해자는 김씨까지 모두 7명에 이릅니다. 국가는 얼마나 더 버틸 셈인가요. 민주화 시기에도 외면받았던 형제복지원 사건, 이제라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길 기대합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