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돌아가는 윤석열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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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지난 1월 9일,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군사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판결문에는 왜 항명죄가 성립할 수 없는지 조목조목 열거돼 있다. 요약하자면 박 대령은 법률이 정한 대로 직무 집행을 했을 뿐이고, 국방부 장관이나 해병대 사령관에게는 그 집행을 막을 권한이 없다는 내용이다. 군검찰이 집단항명 수괴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수사를 시작한 것이 2023년 8월, 이 단순명료한 판결을 만드는 데 무려 1년 6개월이 걸린 것이다.

그땐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군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 수사의 절차와 관할 구분이 법률에 쉬운 말로 상세히 적혀 있고, 수사의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걸 모를 리 없는 군검찰이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며 구속을 시도하고 기소까지 하는 게 이상했다. 그러다 얼마 뒤엔 대통령 참모들과 국방부 수뇌부와 여당 국회의원들이 앞다투어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법 해석을 들고나와 박 대령을 공격했다. 그렇게 판을 짜니 버젓이 작동하던 하나의 법이 분분한 해석과 논쟁의 대상이 됐고, 온 나라가 갑론을박에 나섰다.

힘 있는 자가 모든 합의를 입맛대로 새롭게 해석하고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건 공화국이 아니라 왕국이다. 지난 3년, 이 정권은 민주공화국이 아닌 윤석열 왕국이었다. 사상과 지향이 어떻든 대한민국의 국민이 왕국의 신민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1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43일 만에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체포됐다. 범죄 피의자 한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도로가 봉쇄됐고, 수많은 경찰관이 사다리를 타고 차 벽을 넘었다. 해도 뜨지 않았는데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광경을 라이브 방송으로 지켜보고 있는 시민이 어림잡아 100만명을 넘었다. 한편에선 국민의힘 의원 수십 명이 관저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다. 대한민국에 법이란 것이 생긴 이래 가장 해괴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체포영장 발부는 법원의 몫이고, 집행은 수사기관의 몫이며, 피의자에겐 이걸 거부할 권리가 없다. 그런데 윤석열이 체포를 거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발부도, 집행도, 거부도 해석과 논쟁의 영역에 접어들고 말았다.

이젠 이런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할 목적으로 전시·사변 때나 발령할 수 있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했는데 3시간이 넘도록 대통령이 이를 공포하지 않았고, 군과 경찰은 병력 배치를 유지했다. 내란죄 피의자들은 제각각 검찰에도, 공수처에도, 경찰에도 수사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아무 법적 근거 없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다가 탄핵당했다. 새로운 권한대행은 임명해야 할 세 명의 재판관 중 두 명만 임명하고 내란 특검에는 거부권을 행사하더니, 윤석열 체포는 경호처와 수사기관이 합의하라고 권고하는 게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최선이라 항변한다. 법과 합의와 상식과 권위의 모든 영역에서 매일 새로운 해석과 논쟁이 시작된다.

합의는 늘 갱신될 수 있으나, 그 갱신 역시 합의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공화국의 작동 원리다. 힘 있는 자가 모든 합의를 입맛대로 새롭게 해석하고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건 공화국이 아니라 왕국이다. 지난 3년, 이 정권은 민주공화국이 아닌 윤석열 왕국이었다. 사상과 지향이 어떻든 대한민국의 국민이 왕국의 신민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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