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시국 풍자 봇물 “숨 좀 쉬며 살자”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뮤지컬 <틱틱붐>·연극 <보도지침> 등

뮤지컬 <틱틱붐> 공연 장면 /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틱틱붐> 공연 장면 / 신시컴퍼니 제공

순간의 예술인 연극과 뮤지컬은 시대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대중의 문제의식과 불안감이 실시간으로 작품에 반영된다.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마당극 형식의 시국 풍자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정치적 혼란이 점입가경에 이르러서인지 부조리(不條理·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 이해되지 않는 것) 철학도 고개를 든다. 방백(무대 위 다른 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만 듣는 것으로 약속된 대사)으로 무대를 여는 뮤지컬 <틱틱붐>과 연극 <클뤼타임네스트라>, 촌철살인의 대사로 시국을 은유하는 연극 <보도지침>·<내 무덤에 너를 묻고> 등 요즘 상연되는 대다수 공연이 그러하다.

<틱틱붐>(조너슨 라슨 작·작곡, 황석희 번역·한국말 가사, 이지영 연출, 최영은 무대, 임재덕 조명, 이수경 영상)의 프리쇼(작품의 세계관에 몰입하게 이끄는 사전 공연 혹은 장치들)는 색다르다. 공연 시작 전부터 ‘틱틱’ 반복되는 음향과 암전 속 3층짜리 노란 정글짐 세트가 호기심과 두통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의 불안과 청춘의 욕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시국 답답함 반영한 사이다

슬쩍 나타난 존(배두훈·장지후·이해준 분)은 불안을 청각화한 ‘틱틱(tick tick)’ 음향, 무대예술로 형상화한 ‘붐(boom)’에 대한 소회와 시대의 답답함을 전한다. “지금은 1990년 거지 같은 시대라고.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더 쉽겠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 뭐 더 어떻게 할래. 왜 이렇게 겁이 많아. 깡 없어? 내가 할게. 역대급 꼰대 중에 손꼽히는 왕꼰대. 법 위에 군림하고 고집불통에 나라를 개판 오 분 전으로 만들고 있는 ‘조지 부시’. 이렇게 하면 돼”라는 존의 방백에 객석은 초반부터 폭발한다.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다. 말 그대로 붐(boom)이다. 극 중 상황과 동시대 상황을 교묘하게 엮어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연결하는 마당극 방식의 재치 있는 시작이다.

뮤지컬 <렌트>로 유명한 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인 작품 <틱틱붐>은 1인극으로 출발해 3인극으로 확장돼 2001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한국서 7번째 시즌인 이지영 연출의 <틱틱붐>은 존의 여자친구 수잔(방민아·김수하 분) 및 절친 마이클(김대웅·양희준 분)과 더불어 5명의 앙상블이 추가되면서 중대극장 규모로 커졌다. 회전하는 놀이터와 총천연색 조명, 클로즈업되는 존의 표정은 청춘의 불안과 열정, 성공과 방황을 관객들이 온전히 전유하도록 돕는다.

고대 그리스 극작가인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아가멤논>을 모티브로 한 연극 <클뤼타임네스트라>(강훈구 작·연출, 김현 조명, 함승완 음향, 극단 공놀이클럽)는 더 직접적이다. 신탁으로 딸을 죽이고 트로이 전쟁에 출전한 아가멤논이 10년 만에 귀환해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하는 서사를 동시대 한국의 예술계에 대입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는 예술고등학교 3학년으로 극작을 전공하는 태주(김기주 분)다. 여배우 승완(김설 분)은 정치 풍자 연출로 유명한 남편 기문(김중우 분)과 연극 <나의 아가 아가멤논>을 올리기 전날 남편의 실수로 아이를 잃는다.

기문이 유학을 떠나고 남겨진 승완은 시누이 기영(신현실 분)이 학과장으로 있는 예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지내며 고통을 삭인다. 태주의 여자친구이자 기영의 딸인 무용 전공 고등학교 2학년 다현(오예현 분)의 발랄함과 대조적이다. 태주가 방백으로 하는 등장인물 소개에서 기영을 ‘사주를 맹신하는 현 영부인과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거나 기문이 수시로 대통령 탄핵 관련 시사프로그램을 보며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모습은 폭소를 자아낸다.

연극 <클뤼타임네스트라> 공연 장면 / 공놀이클럽 제공

연극 <클뤼타임네스트라> 공연 장면 / 공놀이클럽 제공

3년 후 돌아온 남편에게 배반감을 느끼며 예고 연극제 출품작을 지도하는 승완은 태주를 통해 <아가멤논>의 진정한 주인공은 ‘클뤼타임네스트라’임을 상기하고 연기자로 새로운 삶을 꿈꾼다. 이 작품은 극중극으로 여러 겹의 구성을 하고 있다. 그리스 비극과 현재 한국 예술계, 태주의 극작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기문의 극작 <나의 아가 아가멤논>, 승완의 여배우로서의 삶과 기문을 통해 복기 되는 한국 정치사회의 혼돈을 여러 시공간에 위치시킨다. 무대는 과거와 속마음을 상징하는 위층과 현재 혹은 극중극을 상징하는 아래층으로 나뉘어 복잡한 알레고리(allegory·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로 전달되는 기법)를 형성한다. 시대와 예술계를 풍자하는 부조리함을 연극계의 부조리와 연결한 메타연극이다.

부조리에 대한 촌철살인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윤성민 작, 유영봉 연출, 장지영 드라마트루그, 이민영 미술, 김성구 조명, 극단 서울괴담)는 ‘조선시대가 배경인 현대극’이다. 무대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거대한 관 안에서 인물이 관 뚜껑을 열고 한 명씩 등장한다. 경종(길덕호 분)과 왕세제(김민지 분) 연잉군(훗날 영조)의 권력 교체기를 현재 한국의 탄핵정국과 부동산 사기에 연동했다.

경종은 반대파 김춘택(전종용 분) 일가를 순장하겠다고 공표하며 능묘 조성을 명한다. 이들 가족인 김현주(김성환 분)와 김덕재(공하성 분)는 묘 안에 탈출구를 만들고 집이 있다고 속여 분양사기를 저지르며 생존 자금을 축적한다. 무덤 배경에 록 음악과 사이키 조명, 천장에서 쏟아지는 흙더미 등 표현주의적이면서도 부조리한 총체적 난국 속에 ‘욕심이 과했다. 우리가 도망가면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꼴이다’, ‘일가친척 모두 끌려가고 있다. 체통이라도 지켜야 한다’ 등 정치 상황을 풍자하는 대사들이 그로테스크한 미장센과 함께 와닿는다.

시국을 풍자하는 촌철살인의 대사로 가득한 작품도 있다. 2024년 하반기 서울 주요 대학 및 전국의 대학가 축제 기간에 약속이라도 하듯 차례대로 상연됐던 연극 <보도지침>(오세혁 작, 정철 연출)은 표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됐다. 이 작품은 1986년 전두환 정권하에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 ‘말’에 폭로한 정부의 보도지침에 관한 재판을 다룬다. 탄핵정국 응원봉 시위에 앞장섰던 청년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구호는 “이건 미룰 일이 아니다. 한 달을 미루면 한 달만큼 더 깜깜해지는 거야.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니까”와 “숨 좀 제대로 쉬면서 살고 싶어 그렇습니다. 숨 좀 제대로 쉬며 살게 해주십시오”이다. 모두 <보도지침>의 대사들이다.

<틱틱붐>은 수백 개의 노란 공이 천장에서 쏟아지며 숨이 탁 트이는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 글을 마감하는 내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대통령 체포영장 2차 집행을 생중계로 보았다. 양극단으로 나뉜 목소리들의 처절함에 답답함이 가중된다. 더불어 ‘적반하장’과 ‘후안무치’가 입가를 맴돈다. 현 시국에도 이런 ‘틱틱’을 ‘붐’할 만한 수천 개의 ‘노란 공’이 절실하다. <클뤼타임네스트라>·<내 무덤에 너를 묻고>·<보도지침>은 상연이 끝났다. <틱틱붐>은 2월 2일까지 상연한다 .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이주영의 연뮤덕질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