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 다루는 법-살아 있는 시체로 돌아온 나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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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사건과 일상성의 충돌이 빚어내는 기이한 감성을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으로 차분하고 예민하게 포착해 낸다. 이에 걸맞은 뛰어난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협연도 이야기에 깊이를 부여한다.

/판씨네마㈜

/판씨네마㈜

제목: 언데드 다루는 법(Handling the Undead)

제작연도: 2024

제작국: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스

상영시간: 98분

장르: 드라마, 공포

감독: 테아 히비스텐달

출연: 레나테 레인스베, 앤더스 다니엘슨 리, 바하르 파르스, 비욘 선드퀴스트

개봉: 2025년 1월 22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북유럽 영화는 장르를 초월해 공유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기후환경에 어울리는 왠지 차갑고 건조한 느낌이다. 하물며 공포 영화라면 어떻겠는가?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돼 관객들에게 기억되는 북유럽 공포 영화를 다 끌어모아도 열 손가락 안에 들지 싶다. 일단 영화산업 자체의 규모가 크거나 제작이 활발한 나라들이 아니라는 사실도 기본적으로 주지해야 한다.

<데드 스노우>(2009·노르웨이)로 대표되는 좀비 영화, <프릿 빌트>(2006·노르웨이), <보돔호수 캠핑괴담>(2016·핀란드), <레이캬비크 와일 와칭 매서커>(2009·아이슬란드) 같은 슬래셔(칼부림) 영화 같은 다양한 시도는 있었지만, 그 형세가 지속·확장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반면 판타지적 소재 안에서도 현실성을 담보로 한 ‘기괴한 드라마’ 형태의 작품들이 비평이나 흥행 면에서 선전한 경우가 많았고, 다수의 관객에게도 ‘북유럽 공포 영화’를 대표하는 일종의 대명사처럼 이해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제1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소개된 <킹덤>(1994·덴마크)이다. 원래 TV를 위해 제작된 드라마를 모아 극장에서 상영한 탓에 4시간이 넘는 시간과 심야 상영 자체가 큰 화제가 됐다. 이후 한동안 대한민국에서 밤샘 심야 상영은 큰 유행을 불러오기도 했다. 흡혈귀를 소재로 한 <렛 미 인>(2008·스웨덴), 초능력 아동들이 등장하는 <이노센트>(2021·노르웨이) 같은 작품들은 국내에도 개봉해 호평받은 작품들이다.

상투적 장르에 대한 새로운 시선

연장 선상에서 이번에 개봉하는 <언데드 다루는 법>은 흔치 않은 북유럽 공포 영화의 최신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일대에 원인불명의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다. 이후 죽었던 사람들이 되살아나는 믿지 못할 일이 뒤 따른다.

꼬마 엘리아스를 잃고 관계가 소원해진 아버지 말러(비욘 선드퀴스트 분)와 딸 안나(레나테 레인스베 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에바(바하르 파르스 분)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남편 데이비드(앤더스 다니엘슨 리 분)와 자녀들, 그리고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온 동성애인인 엘리자베트(올가 다마니 분)를 떠나보낸 후 누구보다 큰 상실감에 괴로워하던 노부인 토라(벤테 뵈르숨 분). 이들 앞에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었던 그들이 돌아와 서 있다.

최초의 좀비 영화로 거론되는 빅터 할페린 감독의 <화이트 좀비>(1932) 이후 20세기 말에 이르러 좀비 장르는 공포 하위장르로서 뚜렷한 위세를 점유하게 됐다. 넘쳐나는 편수만큼 다양한 변주가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미라(Mummy)’, ‘스켈레톤(Skeleton)’, ‘리빙 데드(Living Dead)’, ‘언데드(Undead)’ 등의 다양한 표현과 개념이 정리됐다.

노련한 여류감독의 장편 데뷔작

노르웨이 출신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다수의 단편영화와 뮤직비디오, 광고 작업을 통해 내공을 쌓은 테아 히비스텐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비현실적인 사건과 일상성의 충돌이 빚어내는 기이한 감성을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으로 차분하고 예민하게 포착해 낸다. 이에 걸맞은 뛰어난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협연도 이야기에 깊이를 부여한다.

여기엔 원작 소설 작가인 욘 A. 린드크비스트의 남다른 시선과 감성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일찍이 흡혈귀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선보였던 첫 소설 <렛 미 인>을 통해 세계적 인지도를 얻게 된 것처럼, 이번 작품은 소위 ‘좀비’로 통칭하는 ‘살아 있는 시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카메라의 시선은 사건을 매우 조용하고 담담하게 쫓아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증폭되는 분위기는 단순한 ‘공포’나 ‘비애’로 표현할 수 없는 다층적 정서를 유출해 낸다.

특히 중후반부 니나 시몬(Nina Simone)이 부르는 자크 브렐(Jacques Brel)의 명곡 ‘나를 떠나지 마세요(Ne Me Quitte Pas)’가 흐르며 등장인물들의 처연한 모습을 나열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라 할 만하다.

표면적으로는 소재에 비해 자극적 이야기나 특출난 기교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극장을 나온 뒤에도 쉽게 떨쳐낼 수 없는 특별한 애수와 여운을 길게 남기는 작품이다.

차갑고 슬픈 환상의 작가 ‘욘 A. 린드크비스트’

/www.johnajvidelindqvist.com

/www.johnajvidelindqvist.com

이 작품의 중요한 홍보 포인트의 중 하나는 원작 소설의 작가인 욘 A. 린드크비스트(사진)다.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이 영화화한 <렛 미 인>(2008)의 인기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소설가다. 공교롭게 <렛 미 인> 역시 <언데드 다루는 법>보다 1주일 앞서 오는 1월 15일 다시 극장에 걸리는데 2008년, 2015년에 이어 세 번째 개봉이다.

린드크비스트는 1968년 스웨덴 블라케베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판타지에 심취했던 그는 10대 때부터 거리에서 마술쇼를 펼쳤고, 이후에는 코미디쇼나 드라마의 작가로 일하며 직접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소설가로의 전향을 결심한 후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흡혈귀 이야기 <렛 미 인>을 집필한다. 여덟 번의 퇴짜를 맞고서야 2004년에 어렵게 출판이 성사된 이 작품은 바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고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이듬해인 2005년 출판된 두 번째 소설 <언데드 다루는 법>에 이어 2008년 발표한 <나를 데려가>는 스웨덴 최고의 문학상인 셀마 라겔뢰프 상과 예테보리 포스텐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한다.

2011년 출간한 소설집 <묵은 꿈들은 흘려보내길>에 수록된 단편 ‘경계선’은 2018년 알리 아바시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스웨덴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굴드바게상 작품상과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자기 소설을 원작으로 해 만들어진 영화 모두 각색에도 참여하며 애정을 드러내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제작자로도 나섰고 장의사 역으로 직접 출연해 초반에 잠시 등장한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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