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해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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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 편집장

홍진수 편집장

지난주 발간한 주간경향 1611호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기사는 ‘2030 남성, 그들은 왜 탄핵 집회에 없었나’였습니다. 온라인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고, 댓글도 많이 달렸습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도 꽤 회자했습니다. 2030 남성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반응이 눈에 띄었고, 이 기사 역시 ‘성별 갈라치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은 마음 아팠습니다.

지난 1월 7일에는 사무실에서 2030 남성 당사자라는 독자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많이 화난 목소리였습니다. 독자님은 “왜 2030 남성을 악마화하냐. 우리가 뭘 잘못했냐. 나도 탄핵 촉구 시위에 참석했다”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악마화하지 않았다. 나쁘다고 쓴 대목이 어디냐. 정확하게 말해달라.” 독자님은 같은 말을 반복했고, 저도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지적을 하려면 정확하게 말해라. 기사 어디에 2030 남성을 악마화하고 있냐.” 독자님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워졌고, 그렇게 서로 화가 난 채 ‘1차 통화’가 끝났습니다.

답답했습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나, 이를 다시 검토한 저나 ‘2030 남성들이 비난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데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2030 남성 30명을 인터뷰했고, 있는 그대로 답변을 실었습니다. ‘왜 탄핵 집회에 없었나’라고 따지기에 앞서 그 이유를 차분히 들어보려 했습니다.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신 독자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기사 어디에도 ‘비판’이나 ‘비난’은 없습니다. 탄핵 촉구 집회에서 2030 여성들이 주류로 주목받는 반면 2030 남성들의 비중은 확연히 적었기에 그 이유를 찾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통화 뒤 저녁을 먹는데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응대할 수 없었나 반성했습니다. 무엇보다 왜 2030 남성이 이 정도의 기사를 보고도 ‘절규’에 가까운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했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다행히 또 전화가 왔습니다. 30분 전쯤에 통화한 그 독자님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차분히 설득했습니다. 기사의 취지도 설명했습니다. ‘2030 여성이 많이 참석했다’는 근거 자료부터 어떻게 취재를 했는지, 어떤 생각으로 기사를 썼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독자님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제 말을 들어줬습니다. 오해가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겠지만 ‘2차 통화’는 양쪽 모두 언성을 높이지 않은 채 끝났습니다.

2030 남성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합니다. 기사에 쓴 대로 “(남성들이) 말하지 않는다고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극심한 경쟁 속에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회참여와 연대에 대한 냉소와 회의적 태도로 이어진 것’이란 분석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목소리 내기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계엄에 반대하고,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면 2030 여성들 옆에서 더 큰 목소리로 소리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전화해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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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