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추모 그리고 시작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지난 1월 3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 권도현 기자

지난 1월 3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 권도현 기자

지금도 눈에 아른거리는 후배가 지난해 12월 29일 참사가 난 제주항공 여객기에 타고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이어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다.

지난해 12월 29일은 여객기 참사로 아침을 시작했다. 사망자 숫자가 늘어나는 속보를 보면서 생존자도 더 늘어나길 그저 바랐다. 참사 희생자 중 지인이 있다는 소식은 누군가에게 머리를 심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취업준비생 시절 원하던 바를 이루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준비하던 후배였다. 너무 많은 인원이 타고 있었으니 뭔가 잘못 파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직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말에 더욱 그렇게 믿고 싶었다. 후배에게 전화하니 응답은 없고 연결음만 무심히 울렸다. 원하던 바를 이룬 후배와는 일하는 지역이 멀어지면서 어느샌가 안부가 뜸했다. 목소리가 참 듣고 싶었다.

신원 확인 등 수습작업 때문에 유족들은 마냥 슬퍼할 수도 없었다. 후배의 신원 확인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야 빈소가 마련됐다. 유족들은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정부와 원활한 소통, 참사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온전히 애도하고 추모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해결하고 지켜봐야 할 사안이 많다. 참사 원인과 책임규명 등이다. 마음속의 애도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후배가 사고가 난 여객기에 탑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3시간 20여분이 지났을 때 할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후배 소식만큼이나 갑작스러운 부고였다. 고령이었어도 돌아가실 정도로 건강이 나빴는지 몰랐다. 노인병원으로 옮긴 지 보름쯤 됐다. 나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온 신경을 취재에 집중하고 있을 때라 할아버지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파도처럼 밀려온 슬픈 감정은 어릴 때 할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이 떠올라서라기보다 세월이 흘러 바쁘다는 이유로 찾아뵌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졌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떠나고 20여년 동안 성당에 나가셨다고 했다. 그전에는 한 번도 나간 적 없는 성당을 열심히 다니셨다고 했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하셨구나, 마음을 헤아려 봤다. 도토리묵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건 치아가 성치 않아서였단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의 실종 사실을 알리려고 엄마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다 그제야 알고 있는 게 너무 없음을 깨닫는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연이은 비보를 접하면서 주변을 더 둘러보게 된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에서 어린 오베는 처음으로 엄마의 죽음을 맞이한다. 교회에서 엄마를 추모하고 나오면서 오베가 본 장면은 같은 공간에서 결혼하는 한 쌍의 부부 모습이다. 한 공간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하기도 하고 저물기도 한다. 오베가 읊조린 것처럼 영원한 건 없다. 그러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나아가는 수밖에. 감정을 덜어낸 끝에는 시작이 있을 거다. 떠난 이들을 온 마음 다해 애도하면서 다음 단계로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또 그런 여건이 이른 시일 내에 마련되길 바란다. 마침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꼬다리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