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산업화·민주화 이후, 길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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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혼란기, 1960년대 이래로 추진한 국가 주도 산업화 시기, 그리고 1987년을 기점으로 한 민주화 시기를 거쳐왔다. 장기간에 걸쳐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1960년대와 오늘날을 비교해 보자. 인구는 2500만명에서 5100만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경제 규모는 불변가격 기준 국내총생산(GDP)으로 69배 증가했다. 평균 기대수명은 52세에서 83세로 30년 이상 늘었다. 합계출산율은 6.0에서 0.7로 줄었다. 대학진학률을 보면 1960년대에는 고등학교 졸업생 중 5% 미만이 대학에 진학했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70%를 넘어서는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대학진학이 보편화했다. 이제는 고학력 실업자와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해 경제적 관점에서는 과잉학력의 시대가 됐다.

비교 시점을 장기간으로 넓혀 볼수록 한국사회의 전혀 다른 두 모습이 확연하게 대비된다. 장기간에 걸친 이런 변화를 일관해 서술하면, 한국은 단순한 사회에서 복잡한 사회로 진화해왔다. 많은 부문에서 큰 변화가 있었지만, 별로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국토 크기는 간척으로 조금 늘기는 했지만 거의 그대로다. 물론 철도와 도로망 등으로 보면 국토의 모습도 엄청 복잡해졌다. 국토 면적처럼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국가 운영체계다.

1987년 민주체제 위기에 노출

헌법은 최상위에서 국가체제를 규정한다. 한인섭 교수의 <100년의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함”이라는 임시 헌장 제1조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탄생했다고 한다. 헌법은 1948년부터 1987년까지 9차례 개정됐다. 현행 헌법은 1919년에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이어받아 1987년에 개정된 것이다. 현행 헌법은 “6월 민주항쟁으로 일컬어지는, 온 국민이 참여한 반독재 항쟁의 승리로 만들어낸 헌법”이라고 한인섭 교수는 설명한다. “1987년은 헌정사에서 매우 소중하다. 독재에서 민주화로 이행한 결정적 전환점을 마련한 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낸 1987년 민주체제도 여전히 위기에 노출돼 있다.

국민이 선출한 공직자들이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는 이른바 권력 남용이 빈번하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나라 전체를 혼란으로 빠트렸다. 위임받은 권한을 잘못 쓴 가장 위험한 사례다. 한인섭 교수는 “헌법에 권력이라는 단어는 헌법 제1조에만 등장하며 국민만이 권력자이고 대통령은 권력이 아닌 한계가 있는 힘, 즉 권한을 가질 뿐”이라고 설명한다.

최상위 법으로서 헌법은 국가체제를 정의하지만, 구체적인 사안들은 하위 법령뿐 아니라 실제 운용사례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국가 운영체계를 법률체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조망해볼 수도 있다. 앞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단순한 사회에서 복잡한 사회로 이행했다고 서술했는데, 복잡한 사회에서는 어떤 관리체제가 필요한지를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파악해볼 수 있다.

컴퓨터를 이용해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 시계 자판처럼 12개 지점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각 지점은 바로 옆의 지점과만 연결돼 있다. 이 경우는 둥근 원형의 네트워크가 된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12번 지점에서 6번 지점까지의 거리는 가장 먼 6이고, 9번 지점까지의 거리는 3이다. 원형 네트워크의 열두 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거리를 계산하면 평균 3.3이 나온다. 이제 두 개의 연결선을 만든다. 12번 지점과 6번 지점을 연결하고, 3번 지점과 9번 지점을 연결한다. 이렇게 하고 난 후에 평균거리를 계산하면 2.3이 된다. 연결선 두 개가 각 지점 사이의 거리를 현저히 낮춰준다.

사회 조직에서 아주 흔한 다층적 위계 구조는 나무 모양의 네트워크로 나타난다. 나무형 네트워크를 만들어 다양한 형태의 수직적 위계 구조를 실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40인으로 구성된 조직을 위계는 3단계로 하고 단계별로 세 그룹씩 나누는 경우다. 이렇게 만든 나무형 네트워크로, 위와 같은 실험을 해보면 네트워크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가는데 소요되는 거리가 4.4에서 4.1로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연결선이 생길 때마다 거리가 줄어드는 효과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컴퓨터에서는 몇 줄의 명령어로 실험해볼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조직을 바꾸는 작업은 쉽지 않다. 더욱이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거버넌스로 이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헌법 개정처럼 어렵지만 단박에 해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헌법 조문을 개정한다고 해서 시스템이 자동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국가 차원의 거버넌스를 설계하고 이행하는 과제는 대부분 장기적 시각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점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장기적인 방향의 하나가 분권화다.

분권화, 사회·경제 효과적으로 조정

위에서 보여준 간단한 컴퓨터 실험에서 분권화는 지점 사이의 연결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연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는 네트워크 모양에 따라 다르다. 원형 네트워크에서는 대각선에 있는 지점을 연결할 때 가장 효율적이다. 다층적 위계 구조의 네트워크에서는 횡적인 연결을 높이는 것이 종적인 연결보다 효율적이다.

우리 사회가 단순한 사회에서 복잡한 사회로 진화했지만, 국가 거버넌스는 거기에 맞춰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은 네트워크 구조로 볼 때 횡적인 연결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경제적으로는 헌법 제119조에서 규정하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와 “경제의 민주화”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권화는 더 복잡해진 사회와 경제시스템을 보다 효과적으로 조정하고 관리하는 방안이다. 분권화의 첫걸음은 양방향 의사소통이다. 상하로, 그리고 좌우로 활발한 소통이 일어나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는 연결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인터넷을 통해 양방향의 소통이 가능하게 됐다. 소비자들은 수동적이지 않고 불량상품에 대해선 불매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생산자들 또한 제품을 알릴 채널이 더 많아졌다. 분권화와 연결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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