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일, 베트남 정부는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벌금을 대폭 강화했다. 벌금은 기존 벌금액의 2~5배로 늘었고, 일부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최대 50배까지 증폭됐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교통범칙금이 분리됐는데 오토바이 신호 위반을 하면 기존 100만동(약 5만5000원)이던 벌금이 6배나 뛰어오른 600만동(약 34만원)이 됐다. 자동차 운전자가 신호위반을 하면 2000만동(약 115만원)이 부과된다. 베트남 정부는 교통법규 질서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이며 교통법규 위반 신고포상제도도 함께 실시했다. 일명 ‘교통 파파라치 제도’가 시행되는 것인데 교통법규 위반 정보를 제공한 개인 또는 단체에 과태료의 10%, 1건당 최대 500만동(약 27만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한다. 베트남 일반 노동자 급여가 약 30만원이니 신호위반 한 번 하면 한 달 급여가 없어지는 셈이다. 과도한 벌금이라는 아우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항간에는 ‘세수가 부족한 베트남 정부가 벌금 징수를 통해 국가 재원을 확보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이러한 강경책은 교통사고율 감소와 교통법규 준수를 통한 사회질서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도로교통사고 사망자 급증
베트남은 202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인구 10만명당 도로교통사고 사망률이 대폭 개선된 모범 사례 국가’였다. WHO의 ‘2023년 세계 도로 교통안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베트남의 도로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25.4명이다. 그러던 것이 2021년 17.7명으로 10년 만에 43.5%나 줄었다. WHO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교통사고 사망자의 21%가 스쿠터, 오토바이 사고에서 나오고 특히 동남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 사망 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WHO는 베트남의 사망자 수 감소를 여러 나라에 공유하며 우수 사례로 극찬했다. 오는 2월 18일 모로코에서 열릴 제4차 세계 도로 안전장관 회의(Global Ministerial Conference on Road Safety)에서 베트남은 WHO와 함께 오토바이 운전자를 위한 교통안전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렇게 도로교통 안전 우수국가를 향해가고 있던 베트남의 도로교통사고 사망률은 지난해 10년 전으로 되돌려졌다. 2022년 도로교통사고 1만1448건, 사망자 6364명에서 2024년 도로교통사고 2만1532건, 사망자 9954명으로 악화했다. 2025년 1월 1일부터 베트남 정부가 벌금을 대폭 인상한 것은 바로 최근 급격하게 증가한 교통사고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가 2016년, 2020년에 교통범칙금을 대폭 인상한 이후 교통사고가 급격히 줄었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 급증하는 도로교통사고 사망률에 베트남 정부는 한 달 급여 수준의 벌금 부과라는 극약 처방을 꺼내 든 것이다.
강력한 벌금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이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교통 인프라 확충이 함께 진행돼야만 한다. 여전히 베트남에는 제대로 기능을 못 하는 고장 난 신호등이 많기 때문이다. 2025년 1월 6일 국회에서 시민들의 불만 및 청원을 검토한 쩐 꽝 프엉 국회부의장은 “시민들에게 부당한 벌금이 부과되지 않도록 교통 신호 시스템을 점검하고 신뢰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도시교통 전문가인 응우옌 쑤언 투이 박사는 2023년 4월 호찌민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의 교통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고, 신호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고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도시에는 지하철, 도로, 보도 등의 공공영역 공사로 인해 교통 혼잡이 증가해 교통사고 발생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벌금을 강화하더라도 교통 인프라 개선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민들이 여전히 불편한 도로 환경과 혼잡한 교통 상황에서 위반을 저지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쩐 탄 만 국회의장 역시 “강력한 벌금 규정이 초기에 구현되기 어려울 수 있어서 시민들에게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베트남 도로교통환경부와 교통통신대학이 공동으로 발간한 논문 ‘베트남 교통사고 분석’에 따르면 오토바이 운전자와 보행자의 잘못된 습관이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베트남 국가교통안전위원회 역시 최근 ‘자동차 급증’과 ‘운전자 보행자의 교통안전교육 부족’을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2023년 7월 꾸앗 비엣 훙 국가교통안전위원회 부위원장은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잘못된 차선 진입 때문에 차량 흐름이 막히고 이동 속도가 느려지면서 사고 발생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강력한 벌금으로 시민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울러 교통안전 의식 전환을 위한 교육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트남 정부가 교통사고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한국 사례를 공부해볼 필요가 있다. 1980~1990년대 한국 역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나라로 악명이 자자했다. 음주운전, 신호위반, 과속이 만연해 교통사고가 빈번했다. 이에 한국 정부 역시 교통법을 개정하고 단속을 강화하고 벌금을 높였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교통문화 개선을 급속도로 변화시킨 것은 처벌이 아닌 국민 인식 변화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행사를 준비하면서 교통질서 준수가 국격을 드높이고 국가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교통질서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 여겼다. 애국심으로 대한민국 교통질서는 빠르게 개선돼갔다. 여기에 더해 대한민국 운전자들이 정지선을 적극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계기는 1996년 MBC 예능프로그램에서 시작된 ‘이경규의 양심냉장고’ 덕분이었다. 차량정지선을 지키면 냉장고를 선물하는 이 프로그램은 전 국민이 정지선 준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베트남 사람들의 애국심은 세계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베트남 정부는 2022년까지 베트남이 WHO에서 평가한 도로교통안전 우수국이었다가 2023~2024년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바람에 10년간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것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나의 교통위반이 베트남 국격을 떨어뜨린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자발적으로 교통법규를 준수할 것이다.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