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초급장교 양성기관에 ‘사관학교’란 명칭을 붙이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육군사관학교(육사) 명칭의 원조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다. 일본제국 육사는 일본이 육군 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1874년 개교한 군사학교다. 일본제국 육사의 사관(士官)은 일본 봉건시대 무사(武士)인 사무라이의 개념과 맞닿아 있었다. 넓게 보면 메이지유신 이후 사무라이와 같은 세력을 사관으로 대체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한국에만 있는 사관학교
일본제국 육사는 일본의 패전과 함께 1945년 폐교됐다. 일본은 패전 이후 평화헌법으로 군대를 가질 수 없어 1952년 방위대학교를 개교했고, 사관학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본 자위대에는 사관이란 명칭도 없다. 대신 자위관이 있다. 자위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방위성의 직원으로, 무관이라고도 부른다.
미국 육군 장교를 양성하는 기관은 미합중국 군사대학(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이다. 웨스트포인트(West Point)는 미 군사대학이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시에 있어 붙은 별칭이다. 미 해군 장교 양성기관은 미합중국 해군대학(United States Naval Academy)이다.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Annapolis)에 있어 미 군사대학처럼 아나폴리스라는 별칭이 있다. 미 공군 장교 양성기관은 미합중국 공군대학(United States Air Force Academy)으로 미국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에 있다. 이들 육·해·공군 군사대학은 모두 4년제 연방 교육기관이다. 한국에서 미국 군사대학’을 ‘미국 사관학교’로 부르는 것은 한국 육사에 빗댄 편의적 표현일 뿐이다.
한국 육사는 홈페이지에서 1946년 5월 1일 개교한 국방경비대사관학교가 육사의 모체라고 설명한다. 정작 일본에서는 1945년 사라진 사관학교가 1년 만에 한반도에서 부활한 셈이다. 육군사관학교란 명칭이 일제의 잔재라고 하는 이유다.
조선과 대한제국에 ‘사관’(士官)은 없었다. 간부를 양성하는 개념으로는 ‘무관’(武官)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1896년 설립된 육군무관학교(陸軍武官學校)가 대표적인 예다. 1910년 경술국치(한일병합조약)를 앞두고 없어진 육군무관학교는 일제강점기에 신흥무관학교가 그 명칭을 이어받았다.
과거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군국주의의 특징은 천황을 앞세운 국가주의다. 일본 군부는 먼저 독단적으로 행동한 후 자신들을 따르라고 강요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31년 9월 일본제국 관동군이 일으킨 만주사변이다. 한국에서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도 일본 제국주의 군부의 군사적 사고 및 행동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혁명을 통해 국가를 구하겠다”는 명분으로 국민적 합의 없이 군부가 독단적으로 정권을 탈취한 사건이다. 신군부의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도 국민 동의없이 군대를 앞세워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이었다. 둘 모두 군사력을 정치적 권력을 추종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12·12 군사반란은 정권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고, 12·3 비상계엄은 국민의 저항에 밀려 실패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버지’ 없는 육군
공군은 ‘공군의 아버지’로 제2대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창석 최용덕 장군을 꼽는다. 공군은 “대한민국 공군을 창설한 주역들이 광복군의 독립투쟁을 계승했다”며 “대한민국 공군에는 광복군의 숭고한 조국애가 뜨겁게 흐르고 있다”고 소개한다. 최 장군은 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장 출신이다. 해군은 초대 참모총장이면서 독립운동가의 아들인 손원일 제독을 ‘해군의 아버지’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육군은 ‘육군의 아버지’로 추앙할 수 있는 인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 1~16대 육군 참모총장 13명 가운데 12대 최영희 참모총장을 뺀 12명이 일본군(학도병 포함)이나 만주군 출신인 탓이다. 이중 5명은 정부가 죄질이 가장 나쁘다고 공식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도 포함됐다. 그러다 보니 일부 보수 언론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사령관이자 미8군 사령관이었던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을 ‘한국 육군의 아버지’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한국 육군은 미군의 양아들이란 말인가.
한국 육군의 창군 주역 상당수가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 군국주의와 맥이 닿다 보니, 육군에는 일본 제국주의 육군처럼 유난히 조작되거나 날조된 육탄용사가 많다. 육탄 10용사와 육탄 5용사가 대표적이다. 1949년 5월 개성 송악산 전투에서 북한군 토치카를 폭파한 후 전사했다고 알려진 육탄 10용사의 상당수가 북한군에 귀순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전쟁 개전 초기에 육군이 심일 소령과 함께 북한군 자주포를 화염병으로 폭파했다고 미화한 육탄 5용사는 조작된 ‘유령용사’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육군은 존재하지도 않은 가공의 군인들을 영웅으로 포장해 매년 추모행사까지 치렀다. 그러다 조작 사실이 드러나자 대국민 사과는커녕 지금도 쉬쉬하고 있다.
육군의 가짜 영웅 대부분은 일본 군국주의를 모방한 과거 일본군 출신 육군 수뇌부의 조작품이다. 그들은 일본 군국주의 선동의 도구를 빌려와 호국 영웅의 아이콘으로 포장했다. 지금은 원조 가짜 영웅을 만들었던 일본조차 ‘(관동군) 육탄 3용사’와 같은 군국주의 가짜 영웅을 반성하고 있다. 하지만 육군은 군 역사 바로 세우기 얘기가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광복군 역사 찾기나 국군의 날 변경에 소극적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3번의 군부 쿠데타는 모두 ‘아버지 없는’ 육군의 육사 출신 인사가 주도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민주사회에서 군의 역할보다는 맹목적 국가주의를 앞세운 육사 교육이 낳은 결과물이다. 윤석열 정권의 군부는 육사 정신을 유신 시대와 군사정권 시대로 돌리려 했다. 대표적인 것이 독립군·광복군 흉상 철거 시도와 ‘육사 정상화’라는 명목의 교과과정 개편이었다. 먼저 2023년 8월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을 포함한 독립군과 광복군 영웅 흉상을 치우고 일본군 간도특설대 출신인 백선엽 장군의 흉상을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이어 생도들에게 계엄에 대해 가르쳤던 ‘헌법과 민주시민’ 수업을 폐지했다. 윤석열 군부의 퇴행적 역사관을 보여준 것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육군사관학교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육사 출신 예비역 장성들은 육사를 ‘태릉 육군대학’으로 개칭해 제2의 도약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더 나아가 미래전에 대비하고 육·해·공군의 통합 작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관학교 통합안도 나온다. 육·해·공군 통합군사대학, 가칭 ‘국군대학’의 출범이다. 군 개혁방안 중 하나로 국군대학과 같은 개념의 통합안이 제시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2009년 3월 국방부의 ‘사관학교 교육 운영 개선 TF’ 구성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사관학교 교육 통합은 조직이기주의에 눌려 흐지부지됐다.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국군대학이 다시 부상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