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 중 가장 인상 깊은 사람들은 대개 활동가들이다. 노조나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거의 항상 가용 자원이 제한되거나 부족한 상태에서 헌신적인 노력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기자라는 직업은 이들의 이름 없는 헌신에 무임승차하는 경우가 많다.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상당수 활동가는 일을 대하는 태도만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놀라움을 준다. 현실이나 한계를 잘 알면서도 미래와 이상을 이야기한다. 활동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연대’ 같은 말이 그렇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부서지기 쉬운 개개인들의 연대를 활동가들은 믿는다.
지난 몇 년간의 사회상을 지켜보면서 활동가들이, 더욱 정확하게는 시민사회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민사회는 진영논리에 쉽게 휘말렸고, ‘운동권’으로 싸잡아 매도되는 일이 잦아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새로운 구상을 거의 말하지 못했다. 노골적인 노조 탄압 등에 수세적인 반대를 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지난주 전국의 탄핵 광장을 취재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노조나 시민단체 밖에도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직장인이기도, 비정규직이기도, 노래방 도우미기도 했다.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여성가족부 해체를 공약하고 ‘여성 혐오’를 전면에 내세운 윤석열 정부 집권기에 이들은 탄압받는 소수가 되는 경험을 했고, 한 명의 활동가로 의식화했다. 이들은 여느 활동가처럼 ‘연대’를 말했다.
2024년 12월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은 늦은 밤 농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남태령으로 향했다. 연대는 이튿날 새벽까지, 그다음 날까지, 그리고 오늘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단식 투쟁 중인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로, 고공 농성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로 ‘남태령에서 온 소녀’의 이름으로 후원금이 입금됐다. ‘연대’는 더는 이상에서만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다.
광장의 문이 닫히고 새로운 사회가 열릴 때 한국사회는 항상 누군가를 뒷전에 남겨뒀다. 이번 광장의 마무리도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다만 ‘연대’와 함께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뒤처진 사람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