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막을 내리고 있다. 한 해를 뒤돌아보며,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특히 한국의 정치적 격변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현 정권의 취약한 부분이었던 여야 협치와 소통, 사법리스크 등은 임기 내내 삐걱거리다 계엄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국민의 단합된 목소리와 시민 단체들의 즉각적인 행동이 이를 막아냈다. 국회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 민주주의의 원칙을 수호했고, 이를 통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아 있지만, 힘에 의존한 권력 집중과 민주주의의 원칙 훼손을 한국 국민이 더 허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졌다.
2024년 정치적 변화와 함께, 지구도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의 관측 결과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62도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설정한 기온 상승 한계선인 1.5도가 올해 처음 무너졌다. 과학자들은 1.5도 이상의 기온 상승이 지속할 경우 지구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한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지구의 경고는 숫자로만 그치지 않고 기후재앙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2024년 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로 몸살을 앓았다. 서울 도심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로 소중한 생명이 희생됐다. 전국 평균기온은 25.6도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고, 서울은 39일간 열대야가 이어져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여름 내내 이어진 폭염이 추석 연휴까지 덮쳐 성묘하는데 땀을 뻘뻘 흘렸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상고온으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북극과 남극에서는 얼음이 녹아내려 바다 수위가 계속 상승했다. 2024년 10월 스페인 동남부를 덮친 기습 폭우는 22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3~5월 브라질에선 136명, 케냐에선 228명이 폭우와 홍수에 숨졌다. 7월 미국 동부에선 불볕더위로, 서부에선 허리케인으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얽혀 있는 정치와 환경
인간 사회와 지구가 직면한 위기는 본질에서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정치와 환경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발생했지만, 두 위기는 기존 체계의 취약성을 드러내며 대응 방식에서도 중요한 공통점을 보여준다. 한국의 탄핵 사건은 민주주의가 소수 권력에 의해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했고, 이를 막기 위해 국민의 단합된 목소리와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마찬가지로 기후위기는 인류의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이 온실가스 증가를 초래하며 지구의 기후시스템을 위협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이 힘을 합쳐 기존의 구조를 바꾸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정치와 환경, 특히 기후위기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정치의 안정성과 투명성은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이며, 한 국가의 정치적 선택이 전 세계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과 규제는 기후위기 대응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정치적 선택은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법안을 제정하거나, 반대로 화석연료 산업을 지원하며 위기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환경적 문제를 넘어 정치적 안정성과도 직결된다. 극단적 기후 현상은 자원 부족, 난민 문제 그리고 지역 갈등을 일으키며, 이는 정치적 불안을 심화시킨다. 기후변화로 대규모 이주와 그로 인한 국제적 갈등의 대표적 사례가 방글라데시다. 해수면 상승, 홍수, 가뭄 등으로 생계 수단을 잃은 많은 방글라데시인이 인도로 이주했고, 이는 인도 북동부 지역에서 토지와 자원을 둘러싼 갈등, 폭력 사태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낙동강 녹조 사태로 식수원 갈등이 지역 간의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와 부산은 악화하는 수질 문제로 취수원을 낙동강 상류로 옮기려 하지만, 상류 지역의 재산권 침해와 지역이기주의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기후위기는 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 해결이 필요한 문제다.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정부가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끌어낼 수 있다.
돌아온 기후 빌런
다가오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 관계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과거 임기(2017~2021) 동안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 산업을 부활시키며 기후 대응에 역행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거부하며 기후변화를 “사기”라 주장했던 그는, 과거 임기 동안 미국의 환경보호정책을 줄줄이 폐지하며 환경과의 전쟁을 치렀다. 오바마 정부 때 만들어진 환경 규제는 물론 공화당 소속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69년 제정한 뒤 반세기 이상 미국 환경정책의 기틀이 돼온 국가환경정책법(NEPA)까지 개정해 미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정에 바로 재가입했고, 2022년 국가환경정책법을 복원하는 등 재생에너지 확산에 집중하고 친환경 기술 확대를 지원했다.
2025년 1월 ‘기후 빌런(악당)’ 트럼프 대통령이 돌아온다. 그가 집권 1기를 시작한 2017년에 비해 상황은 더 나빠졌다. 8년 사이 지구는 더 뜨거워졌고, 지구 재앙은 현실로 이어졌다. 기후위기 부정론자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2기 동안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노력을 되돌릴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에 맞서는 세계적 노력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탄소 배출국 미국을 이끌 만큼, 그의 반환경 정책은 미국을 넘어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가 확정된 날 국제사회에선 “기후의 암울한 날”이란 탄식이 나왔다.
2024년이 끝나가는 지금,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계엄의 위기와 대통령 탄핵 과정을 지나는 한국사회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꾸고 있다. 기후위기 앞에서도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그려야 한다. 정치적 변혁이 그러하듯, 환경적 변화 또한 단순한 기술이나 정책의 변화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가치관, 행동 그리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2024년은 혼란과 아픔 속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이를 발판 삼아 우리는 더 지속가능한 사회와 자연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그리고 이 지구를 위해.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