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을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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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 편집장

홍진수 편집장

드라마 <비밀의 숲>(2017)과 <라이프>(2018), <비밀의 숲 2>(2020)를 연달아 본 적이 있습니다. 재밌다고 소문이 났지만, 방영 당시 못 본 <비밀의 숲>을 해외 출장길 비행기에서 몰아 본 뒤, 돌아와서는 같은 작가(이수연)가 쓴 드라마를 계속 찾아봤습니다.

드라마 세 편을 모두 보고 ‘결국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꾸준히 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밀의 숲> 시리즈의 주인공인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과 형사 한여진(배두나 분)도, <라이프>에 등장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예진우(이동욱 분)와 흉부외과 센터장 주경문(유재명 분)도 기득권이란 거대한 벽에 맞서 치열하게 싸운 뒤 ‘그냥’ 하던 일을 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마치 이런 것은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원래 할 일을 했을 뿐이란 듯이.

갑자기 드라마 이야기를 꺼낸 것은 ‘12·3 비상계엄 사태’ 때 활약한 IT(정보기술)업체 직원들의 이야기를 뒤늦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월 10일 전자신문의 보도를 보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2시간여 만에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결의를 차질 없이 할 수 있었던 데는 ‘국회 표결 시스템’을 운용하기 위해 국회 담벼락을 넘어간 일부 IT 업체 직원들의 공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국회 표결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도록 유지·보수하는 한 IT 서비스 회사 소속 직원들로 알려졌는데, 이들의 노력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문제없이 표결에 부쳐졌고,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습니다.

말 그대로 폭풍 같았던 12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일부 권력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할 일을 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심야에도 신속하게 국회로 모였고, 국회의장은 침착하게 절차를 지켜가며 표결을 이끌었습니다. 그사이 보좌진들은 국회로 난입한 계엄군을 온몸으로 막아냈습니다. 용감한 시민들은 무도한 대통령의 손에서 권력을 빼앗기 위해 계엄 선포에 대응해 국회를 에워쌌고, 마침내 폭력 없이도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여전히 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국은 ‘꾸준히 내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을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을 겁니다.

주간경향 이번 호는 표지 이야기로 이렇게 할 일을 한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지난 12월 14일 서울 여의도에 모인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탄핵 의지로는 서울에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전국 곳곳에 모인 ‘우리 동네의 딸들’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군 관계자들의 ‘양심선언’과 ‘폭로’ 등이 이어지면서 진위 파악이 더 어려워진 ‘내란의 밤’ 상황을 다시 꼼꼼하게 정리했습니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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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