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과서 말고 정치 교과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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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지난 12월 3일 밤, 엄마·아빠 어깨 너머로 뉴스를 보던 딸이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무서워. 전쟁 난 거야?”, “아니. 전쟁 안 났으니까 울지마. 전쟁 나면 그때 같이 울자.” 국회 본청에 들이닥친 계엄군이 민간인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을 보며 내 심장도 돌처럼 굳어버렸고, 그래서 어린 딸을 다정하게 위로하지 못했다. 참 미안했다.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은 순식간에 우리 모두의 일상을 붕괴하고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정신과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을 능멸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민주 헌법에 따라 형식적 민주주의를 갖추고, 1988년 제6공화국이 출범한 지 36년이 지났으나, 한국사회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고, 급기야 ‘12·3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졌다. 여러 원인 가운데 정치를 터부시하고 정치 혐오를 가르치는 공교육을 지목하고 싶다. 초·중·고 사회 교과에서 인권·헌법·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지만, 과연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이 입시 몰입 경쟁 교육과 병존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길러지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어린이·청소년에게 정치와 선거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지 않은 채 만 18세가 되면 선거권을 부여하고 ‘꼭 투표하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비교육적이며 비민주적인가?”

입시·고시 패스에 매몰된 한국 교육이 실질적 민주화를 저해하고 있다.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길러지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어린이·청소년에게 정치와 선거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지 않은 채 만 18세가 되면 선거권을 부여하고 “꼭 투표하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비교육적이며 비민주적인가? 학교는 정치판이 돼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가 아니라 토론이다. 어린이·청소년이 정치적 의견을 갖지 못하게 하는 학교, 어린이·청소년의 정치적 의견을 무시하는 사회, 토론은 없고 구호만 난무하는 광장에서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현행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과학탐구 영역은 사회 9과목, 과학 8과목(총 17과목) 중에 두 과목을 선택해서 시험을 치르게 돼 있다. 사회 9과목(한국지리, 세계지리, 세계사, 동아시아사, 경제, 정치와 법,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중에 ‘정치와 법’ 과목이 있고, 실제 수능 사회탐구 영역에서 ‘정치와 법’을 선택하는 응시자는 10~11%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개정 교육 과정(‘정치와 법’ 과목이 없어지고 ‘정치’, ‘법과 사회’ 2과목으로 분화)에 따른 2028년 수능 개편안은 사회탐구 영역을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통합사회’ 한 과목으로 대폭 줄여서 정치 교육은 말 그대로 멸종위기에 처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지난 12월 10~15일 사이에 실시한 인공지능(AI) 교과서 관련 설문조사에서 학부모와 교원 등 응답자 총 10만6448명 중 86.6%가 AI 교과서 도입에 반대했다. 지금 필요한 건 AI 교과서가 아니라 정치 교과서다. 모든 어린이·청소년은 만 18세 이전에 투표 행위의 의미를 배울 권리가 있다. 그걸 가르치지 않는 한국 교육은 위헌이다. 정치교육을 법제화하라!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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