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미워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 이보다 희극이 있을까. 시민들의 희생과 민주화 운동으로 일궈낸 한국의 민주주의가 2024년 한밤중에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보다 비극이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12월 3일 발포된 포고령에는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언론 통제”, “처단” 등 섬뜩한 문구가 박혀 있었다. 군·경이 국회에 투입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밤 국회로 갔다. 경찰이 출입을 막아섰고, 상공에선 계엄군을 태운 헬기들이 굉음을 내며 연이어 국회 안으로 향했다. 덮쳐오는 어둠이 얼마나 길고 깊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불통’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으레 국회를 찾아 여야 의원들을 만났다. 미우나 고우나 정국 안정을 위해 협치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국회 개원식, 지난 11월 예산안 시정연설 모두 불참했다. 야당은 ‘명태균 게이트’ 등 윤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갖은 의혹을 조사할 특검 도입을 촉구했고,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반복했다.
대통령의 불통이 야당을 향하는 데 그쳤다면 불행 중 다행이었을 것이다. 계엄 선포 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한 국무위원이 없거나 소수였다는 사실은, 이들의 무책임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윤 대통령이 그간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왔음을 시사한다. 급기야 그는 극우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을 맹신해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데 이르렀다.
국민과의 소통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윤 대통령은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과 및 진상규명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다. 파업하는 노동자,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 언론 등은 대화 파트너가 아닌 위법 여부와 잘잘못을 따져볼 조사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불통’으로 일관했다. 지난 12월 7일 “우리 당”에 모든 것을 일임하겠다던 그는 국민의힘 의원 105명의 불참으로 탄핵안이 폐기되자 입장을 번복했다. 지난 12월 12일 대국민담화는 계엄 선포로 국민을 공포와 혼란으로 내몬 데 대한 사과문보다는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한 선전문에 가까웠다.
진실은 새어 나오게 마련이다. 윤 대통령이 군·경에 국회 진입, 의원 체포 등을 지시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모여들었고, 지난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은 찬성 204표로 가결됐다.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왔다.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질문은 무엇인가. 탄핵안이 가결된 다음 날 아침, 한 여성의 말이 마이크를 타고 국회 안에 울려 퍼졌다. “끝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그는 여성, 장애인, 노동자, 노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언급하며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말했다. 2년 반 동안 정치 양극화, 혐오가 극심해졌다. 불통은 ‘다른 존재’에 대한 상상을 불가능하게 한다. 집회 현장에서 불린 노래 제목처럼 ‘다시 만난 세계’를 맞기 위한 열쇠는, 정치인들의 네거티브 공세, ‘기계적 평등’ 따위에 있지 않다. 정치권이 뒷전으로 미뤄온 이들을 소환해야 한다. 미워도 다시 한번, 듣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지도자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