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인터뷰
올 한해 브로드웨이와 한국 뮤지컬 업계를 모두 들썩이게 한 작품은 단연 <위대한 개츠비>(제임스 하울랜드 작곡·마크 브루니 연출·신춘수 총괄 프로듀서)다. 지난 3월 브로드웨이 시어터 프리뷰 공연을 시작으로 4월 본 공연, 첫 주 매출 100만달러 기록, 6월 토니상 의상상 수상, 오픈런 공연 확정, 20주 연속 100만달러 클럽(1주당 매출액 100만달러 이상 기록) 유지 등 숨 가쁘게 달려왔다. 내년 4월에는 런던 콜리세움에서 웨스트엔드 초연을 확정해 지금 한창 오디션 중이다. 한국 공연도 기획돼 있다. 2025년 7월에는 신춘수 대표가 단독 리드 프로듀서이며 오디컴퍼니가 지식재산권(IP)을 가진 한국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뮤지컬 산업 양대 산맥인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 서울에서 동시 상연된다.
인터뷰를 위해 올해 3월 처음 신춘수 대표(56)를 만났다. 서울 강남에 있는 오디컴퍼니 회의실에서 만난 그는 소년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내고 있었다. 미국 뉴저지주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1200석 규모)에서 전석 매진된 2주간의 <위대한 개츠비> 트라이아웃 공연(정식 공연 전 수정 보완을 위한 공연)으로 힘을 받은 상태였다. 신춘수 대표의 판단과 결정은 거침없었다.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청년이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오픈런 공연 리드 프로듀서가 되는 꿈을 다시 꾸고 이루기까지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을까? 트라이아웃 공연에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의 두 배인 700만달러를 투자하고, 프리뷰 공연에도 매주 10억원 이상 지출한 통 큰 결정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올 한해 한국 뮤지컬 해외 진출을 돌아보기 위해 지난 12월 12일 e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 대표는 요즘 뉴욕과 런던, 서울을 다시 오가는 중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돈키호테가 아니다. ‘신춘수’ 그 자체로 세계 뮤지컬계의 전설이 돼가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꿈을 이룬 자의 일성이 궁금하다. <위대한 개츠비> 흥행 성공 후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뮤지컬의 본고장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는 점이 가장 고무적이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브로드웨이 현지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국내외 투자자들도 작품의 가치와 전망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듀서와 크리에이티브, 새로운 투자자로부터도 많은 관심과 협업 요청을 받고 있다. 추후 브로드웨이에 새롭게 선보일 창작 작품에도 많은 기대와 관심이 쏟아지고 있어 감사하다.”
-내년 4월 개막하는 웨스트엔드 공연과 브로드웨이 공연은 다를까? 한국 뮤지컬 마니아들은 <위대한 개츠비>를 언제 한국에서 볼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런던 콜리세움은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공연장으로 <위대한 개츠비>의 화려한 무대 미학을 보여주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스케일과 에너지는 그대로 가져가되, 영국 현지 상황에 맞게 다양한 변수를 조율해 더 풍성하고 발전된 공연을 선보이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2025년 7월 말께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국내 관객들 정서에 맞게 특별한 프로덕션을 준비할 계획이다. 세계 뮤지컬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그리고 한국에서 동시에 상연하게 돼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이후로도 2026년 미국 투어를 비롯해 일본과 유럽, 호주 등에서 매우 긍정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위해 3번의 실패를 거듭하며 300억원 빚더미에 앉은 일화도 유명하다. 어떻게 다시 꿈을 꾸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나.
“2004년 신드롬이 된 <지킬 앤 하이드>를 비롯해 <맨 오브 라만차>, <드라큘라> 등 성공작을 거듭 만들어가면서 꿈이 구체화됐다. 뮤지컬로 세계적인 프로듀서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09년 즈음이다. 2008년 미국에 가서 <드림걸즈> 리바이벌 프로덕션을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디자이너들과 협업했다. LED로 새로운 무대를 만드는 등 여러 제안을 했는데 다 받아줬다. 미국 제작진들을 설득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착실하게 브로드웨이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며 협업했다. <닥터 지바고>는 지금 <위대한 개츠비>를 공연하는 브로드웨이 시어터에서 올렸는데 바로 막을 내렸다. 리드 프로듀서들끼리 이견이 있었고, 연출과 나머지 팀과도 맞지 않았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신작이 100개 올라가면 10개가량 성공한다. 지금 돌아보면 불협화음이 그대로 작품에 이어진 것이다. 두 작품이 망하고 한국에 왔다. 코로나19 시국이었고, 열심히 살며 극복했다. 재충전의 기회를 얻으며 한국 오디컴퍼니도 안정시켰다. 늘 목표로 했던 문학성 기반 작품을 창작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2020년 전후 많은 소설을 읽으며 개츠비를 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팀을 구성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한국 창작진들이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한국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국가는 중요하지 않다. 뮤지컬은 프로듀서, 연출, 작가, 작곡가, 안무가 등 주요 창작진들의 복합 저작물이다. 각 파트에서 잘하는 사람과 일하는 게 중요하다. <위대한 개츠비>는 한국에서 먼저 하고 브로드웨이로 가려 했는데 구체화하면서 미국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요즘 기준은 IP의 소유와 확장을 누가 하는가다. <위대한 개츠비> IP는 오디컴퍼니가 갖고 있다. 단독 리드 프로듀서도 오랜 시행착오에서 나온 결정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다. 실패한 두 작품을 통해 이견이 많아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배웠다. 투자는 처음에 힘들었지만 다 잘 마무리했다. 한국 투자자가 훨씬 많고, 미국 일본 투자자들도 있다. 공연 전까지 2500만달러가 들어간 상태였다. 공연에 들어가면 매주 90만달러가 소요된다. 그때부터는 티켓을 팔아 제작비를 마련하는 구조다.”
-개발 기간이 4년이 채 안 되는데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결이 있을까.
“좋은 작품은 탄력을 받은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대극장 뮤지컬 개발에 3~4년이 걸리는데 <위대한 개츠비>는 4년도 안 걸렸다. 사실 개발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탄력을 받으면 가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템포가 한 번도 안 끊기고 세상의 기운을 받아 쭉쭉 간 경우다. 미국 프로듀서들은 못 하는 행보다. 확실히 내 방식대로 한 것이 통했다. 개발은 꿈을 이루는 과정이었다. 그다음은 비즈니스다. 성과가 함께 가야 한다. 꿈을 이루려는 의지와 열정이 강력하다면 한 장소에서 많은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힘이 생긴다. 외국에서 이 프로젝트를 성공하게 한 힘이다. 목표가 있어 언어는 상관없었다. 절차가 틀려도 목표가 같다면 협업이 어렵지 않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