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동원된 군 지휘부. 왼쪽부터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 연합뉴스·경향신문](https://img.khan.co.kr/weekly/2024/12/20/news-p.v1.20241218.f9690577bd6747c582e9743760468fcf_P1.jpg)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동원된 군 지휘부. 왼쪽부터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 연합뉴스·경향신문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군 수뇌부가 줄줄이 수사 선상에 올랐다. ‘별 17개’가 구속되거나 직무정지됐다. 계엄사령관에 임명됐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대장·육사 46기)은 구속됐다. 고창준 제2작전사령관(대장·3사 26기)이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로 육군을 이끌고 있다. 고 총장 직무대리는 김천보건전문대(김천대 전신) 치기공학과를 졸업해 치과기공사 자격증을 딴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육사 38기)의 명령을 받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중장·육사 47기)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중장·육사 48기),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중장·육사 48기),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소장·육사 50기) 등 사령관 4인은 계엄군의 선봉대로 나섰다. 그 배경에는 김 전 장관의 부하들에 대한 가스라이팅 작업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전·현직 장군들의 시각이다.
‘아바타’ 방첩사령관
비상계엄령이 발령되면 국군방첩사령부는 계엄사령부 핵심 기구가 된다. 경찰·국가정보원·군사경찰·방첩사를 아우르는 합동수사본부(합수본)를 주도해 모든 정보·수사 기구를 통제한다. 방첩사령관은 합수본 본부장을 맡아 요인 체포·구금·조사, 언론 통제 등의 기능을 총괄한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12·3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인물이다. 비상계엄이 성공했으면 합수본부장직을 맡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를 빼놓고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얘기하기 어렵다. 비상계엄 과정에서 국정원, 경찰 측과 연락을 하는 등 사실상 김 전 장관의 ‘아바타’ 역할을 했다.
여 전 사령관에 대한 방첩사 부대원들의 평가는 박하다. 이재수 전 사령관(육사 37기)과 전제용 전 사령관(공사 36기)을 합한 캐릭터라는 것이다. 정권의 절대적 신임을 믿고 과욕을 부렸던 이 전 사령관과 부하들에게 충성 경쟁을 시켰던 전 전 사령관의 나쁜 점은 다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부대원들의 여 전 사령관에 대한 신뢰지수는 낮았다.
중앙선관위 등 병력 출동 현장에 나간 팀장들은 부대원의 중앙선관위 진입을 늦추며 시간을 끌고, 법무관들은 사령관 지시의 위법성 여부를 따졌다. 그렇다고 여 사령관 지시에 정면으로 항명한 간부들은 없었다.
여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9년 후배이자, 김 전 장관의 충암고 10년 후배로 ‘충암파’다. 그는 군에서 야전 경험이 별로 없고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주로 오가며 근무하는 장교를 지칭하는 ‘아스팔트 군인’으로 분류된다. 군에서는 고급 지휘관을 수행하는 장교들을 ‘가방 모찌’라는 은어로 부른다. 이들 ‘가방 모찌’ 장교들은 초급장교 때부터 군 내부의 권력 관계와 정치권과의 연계 등을 체득할 기회를 얻는다. 자연히 ‘정치 장교’적 성향을 지니게 된다. 고위 장성들도 자신의 부관이나 보좌관으로 동기생 가운데 상대적으로 우수한 장교를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모시던 지휘관이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면 이들의 진급은 탄탄대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하고 계엄사령부를 지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 연합뉴스](https://img.khan.co.kr/weekly/2024/12/20/news-p.v1.20241218.c3e4fd4c2e4d4783864409e57535a3e4_P1.jpeg)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하고 계엄사령부를 지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 연합뉴스
여 전 사령관은 권오성 전 육군참모총장(육사 34기)의 수석부관,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육사 31기)의 정책과장 등을 지냈다. 사단장(소장) 직무는 아스팔트 군인들의 부대장 ‘단골 코스’인 53사단에서 수행했다. 53사단은 사령부가 부산시 해운대구에 있다.
여 전 사령관은 소령 시절 육군본부 홍보기획과에서 근무했다. 당시 홍보기획과는 김판규 전 참모총장이 새로운 육군의 캐치프레이즈를 만들기 위해 신설한 부서였다. 그곳에서 그는 일반 사회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점검해 참모총장에게 보고서를 만드는 업무를 했다. 그의 상관은 홍보기획과의 총괄 장교로 충암고 10년 선배인 김용현 중령이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불법적인 비상계엄에 앞장설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평가가 군내 중론이다. 과거 그의 직속 상관이었던 A 예비역 소장은 곽 전 사령관에 대해 “순둥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는 비상계엄 실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 진입과 관련해 전화를 걸어와 작전 지시를 했다고 폭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곽 전 사령관이 불법 계엄에 따른 부당한 지시를 받았으나 이를 따르지 않았다며 그를 공익제보자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은 준장과 소장 진급을 할 때마다 ‘뒷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뒷말이 나왔던 인물이다. 육사 48기 동기생 가운데 군인들이 흔히 말하는 ‘선두 주자’가 아니다.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정보사 군무원 기밀 유출 사건과 여단장 항명 사태에 책임을 지고 경질될 것으로 예상됐던 인물이다. 김 전 국방부 장관은 12·3 비상계엄 사태에 문 사령관을 활용하기 위해 그를 유임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문 전 사령관과 김 전 국방부 장관을 이어준 사람은 전 정보사령관인 노상원씨(육사 41기)였다. 박근혜 정권 때 노씨는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 밑에서 이인자 격인 군사관리관(소장)을 지냈고, 청와대 파견 중이던 문 전 사령관과도 1년을 함께 근무했다. 이후 노씨는 문 전 사령관을 김 전 장관에게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 전 방첩사령관과 곽 전 특전사령관, 이 전 수방사령관, 문 전 정보사령관 등은 모두 A급 장군으로는 평가받기 힘들다는 게 군내 대체적 평가다.
김용현의 특기는 ‘진급거래’
만약 12·3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특전사령관, 방첩사령관, 수방사령관, 정보사령관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여러 명의 영관급·장성급 현역과 예비역 군인들에게 물었다. 이구동성으로 네 명 사령관 모두 진급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특전사령관과 방첩사령관, 수방사령관 등은 육군 대장 보직, 정보사령관은 국방정보본부장(중장)으로 영전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박 전 육군참모총장도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하고, 김용현 전 장관은 더 높은 자리로 갔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대부분 김 전 장관이 오래전부터 부하들에게 ‘자리’(진급)를 제안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 전 장관으로부터 장군 직위를 제안받은 경험이 있는 B 예비역 대령은 “그게 그분의 특기”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의 업무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A씨는 “이 장군도 (한미)연합사에 근무했는데, (육군 대장 자리인) 부사령관 한번 해야 하지 않나”라는 식으로 넌지시 얘기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따르면 진급시켜주겠다’는 식의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역해도 방산업체 취업조차 쉽지 않은 현실에서 별을 하나 더 다는 것을 ‘생계형 진급’이라고 말하는 장군도 있다”며 “진급이 눈앞에 있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급은 군인에게 가장 달콤한 ‘미끼 상품’이자 ‘아킬레스건’이다. 인사권자에게 충성하면 진급이고, 인사권자의 권유를 거절하면 진급은 물 건너가고, 심하면 장군 군복을 벗어야 하는 게 한국군의 생리다. 김 전 장관이 부하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불법 비상계엄에 참여토록 동기를 부여했는지는 당사자들이 입을 열기 전에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현직 군 간부들은 김 전 장관의 가스라이팅 방식을 지목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