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음모론은 달콤하다. 내 답답한 처지를 남 탓으로 돌릴 수 있어서다. 그래서 그런지 현실에 승복하기 싫어지는 음모론자들은 주기적으로 진영을 막론하고 등장한다.
하지만 3·15 부정선거라는 역사가 알려주듯 선거 조작이야 하려면 해볼 수야 있지만 들키지 않는 일은 쉽지 않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결국 터무니없는 짓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바로 드러나고 만다. 다 함께 무지몽매했던 시기라면 벌여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학교 교육을 받은 이들이 선거 과정에 참여하는 현대사회에서는 힘든 일이다. 끊임없이 전 세계 각국에서 심심치 않게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두되지만, 문명국이라면 하나같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는 이유다.
그런데도 선진국에서조차 부정선거론이 시들지 않는 이유는 전산이라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개념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원래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의심하게 된다. 엑셀 장표의 숫자를 바꾸듯 누군가가 손쉽게, 그리고 흔적 없이 혼자서라도 부정선거를 해치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버린다. 해커가 침투해서 명령어를 치니 휙 결과가 바뀌었으리라 순진하게 믿어버린다.
하지만 하다못해 결산서 하나도 숫자 하나가 바뀌면 여기저기가 뒤틀리면서 아귀가 맞지 않게 된다. 데이터란 이처럼 서로를 보정하도록 설계되게 마련이라서다. 겹겹이 가동 중인 로깅(일련의 정보 제공기록인 로그를 생성하도록 시스템을 작성하는 활동)과 모니터링을 속여야 하는 일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데이터 조작은 고도의 두뇌를 써야 하는 일이다.
타인의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서 헤집어 놓고 파괴하기는 쉽다. 그러나 남의 집에 침투해서 아무도 모르게 인테리어를 새로 해놓고 주인도, 방문자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30만명이 관여하는 개표와 집계 과정이니 조직적 가담을 이야기하려면 전제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말이 있다. 건전한 사고 추론의 나침반으로 유명한 방법론인데,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도려낸 가장 깔끔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은 달착륙 음모론을 예제로 자주 설명된다. 달착륙 기념사진에서 별이 보이지 않는 건 카메라 노출의 문제라든가 성조기에 주름이 간 건 꽂는 순간의 반동이라든가 이처럼 훨씬 간명한 설명이 있는데, 수많은 인원이 동원돼 비밀리에 달착륙을 날조했으리라 가정하는 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논리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러셀의 찻주전자’도 있다. “화성 궤도를 도는 주전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그 반대의 증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다”는 말로, 불필요한 가정은 그걸 주장하는 사람이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문제는 이러한 과학적 사고와 논리적 추론의 상식적 원칙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삶에 지친 이들에게 내 마음에 맞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란 힘든 과제라서다. 그들은 근거를 제시하는 대신 새로운 망상을 자신의 근거로 삼아 나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현실의 과학은 사치가 된다. “서버를 까”라고 외치지만 그 서버를 들여다볼 능력도 없다. 전산을 이해할 능력이 있는 이들은 오컴의 면도날이나 러셀의 찻주전자를 알고 있으니 그 세계에 기웃거리지 않아서다. 결국 군까지 동원해 사진이라도 찍어 오라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라도 상관없다. 잠시라도 기분이 풀린다면. 음모론은 그렇게도 중독적이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