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선정성과 서정성 사이의 기괴한 노스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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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리뷰에서 “이 영화의 절정은 미쳤다”라고 평하고 있다. 부정하지 않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난다. 모든 악몽과 난장을 서글픈 동화로 승화시키는 인상적이며 결정적인 장면이다.

/찬란

/찬란

제목: 서브스턴스(The Substance)

제작연도: 2024

제작국: 영국, 프랑스, 미국

상영시간: 141분

장르: 공포, 드라마

감독: 코랄리 파르자

출연: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데니스 퀘이드

개봉: 2024년 12월 11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서브스턴스>가 올 5월에 열린 제77회 칸 영화제(각본상 수상) 경쟁 부문에 출품돼 첫선을 보인 이후, 파격적이고 극악무도한 영화라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지난 9월 북미지역에서 개봉한 후에는 영화가 노골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유명작품들에 대한 언급이 더해지며 과연 소문처럼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냐는 지적까지 쏟아졌다. 이런 가열한 논쟁과 소문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한 것은 자명하다.

시대를 직관하는 발칙한 수작인가? 과거 명작들의 명성을 등에 업은 나태한 모방작인가? 필자는 전자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2024년을 되돌아보면 공포영화계에 가장 논란과 화제를 모은 작품은 <서브스턴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에어로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간신히 과거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여배우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분). 어느 날 젊음을 회복할 수 있는 의문의 약품 ‘서브스턴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사용을 결심한다. 문제는 그의 안에서 태어난 새로운 자아 수(마가렛 퀄리 분)가 젊음의 혈기만큼이나 강인한 욕망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이다.

여성이라 그려낼 수 있었던 위험한 선정성

<서브스턴스>는 ‘욕망’과 ‘중독’이라는 보편적인 화제를 한물간 여배우의 악몽을 통해 가시화하고 있는데 이 작품을 한마디로 응축할 수 있는 단어는 ‘자극’이다. 보통의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자극적 요소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영상, 편집, 음악 등 모든 요소가 자극을 유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데, 이는 141분이라는 짧지 않은 상영시간임에도 시작부터 끝까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첫 번째 자극이자 이 영화를 도발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선정성’이다.

엘리자베스의 비애로부터 탄생한 수는 바라보는 이의 내면에 잠재된 ‘에너지’를 자극하는 원초적이고 성적인 생명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를 위해 감독은 다양한 영화적 기법을 총동원해 화려하고 과장된 인물과 배경을 연출한다. 더불어 이에 그치지 않고 아름다운 여체를 노골적으로 탐색하는 관음적인 시선을 반복해 보여준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여주인공의 욕망은 작품의 주제를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필연적 선택이자 묘사다. 하지만 사사건건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작금의 시대에는 자칫 성인지 감수성 문제로까지 불똥이 튈 수도 있고, 그래서 관객 처지에서도 불편할 수 있는 장면들의 나열은 용감함을 넘어서 도착(倒錯)으로까지 보여 의아하게 다가온다.

과거 걸작들에서 수혈해 낸 폭력성

이런 위태로운 혐의를 벗어내고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감독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 스스로가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전제는 다소 과도하고 말초적인 장면에서 야기될 수 있는 오해를 일거에 누그러뜨린다.

지난 11월 말 개봉한 조 크라비츠 감독의 <블링크 트와이스>도 비슷한 예라 할 수 있다. 고립된 섬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파티에 초대된 한 여성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스릴러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여성 감독이 아니라면 함부로 묘사할 수 없었을 끔찍한 폭력의 전말이 드러난다.

두 번째로 두드러지는 자극적 요소는 ‘폭력성’이다.

절정을 향해갈수록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데이비드 린치, 브라이언 드 팔마, 존 카펜터 등 과거 거장들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는 기괴한 신체 변형과 피 칠갑이 극에 달한다.

평소 영화광을 자처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며 숨어 있는 레퍼런스(Reference·참조작품)를 얼마나 많이 찾아낼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 보는 것도 작품 외적인 즐거움이 될 것 같다.

많은 리뷰에서 “이 영화의 절정은 미쳤다”라고 평하고 있다. 부정하지 않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모든 악몽과 난장을 서글픈 동화로 승화시키는 인상적이며 결정적인 장면이다. 독특한 장르 영화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다.

거듭해 환생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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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가 참고해 녹아낸 많은 선배 작품 중에서도 근간이 된 가장 중요한 작품은 1886년 출판된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고전 단편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기이한 사례(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다.

최초의 영화화는 1908년 오티스 터너 감독이 연출한 16분짜리 단편이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는 루벤 마물리안 감독(1931)과 빅터 플레밍 감독(1941)이 각각 장편으로 연출한 흑백작품 두 편이다.

이외에도 ‘지킬’과 ‘하이드’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영화, 드라마는 그 수를 정확히 헤아리는 것 자체가 버거울 만큼 많다. 원작을 그대로 각색한 작품이야 당연하고, 코미디, 로맨스로 장르를 변형하거나, 제목부터 <지킬 박사와 시스터 하이드>(1971), <지킬 박사와 미스 오스본의 기이한 사건>(1981), <지킬 박사와 미스 하이드>(1995)처럼 양성의 대결 구도로 그린 작품까지 등장했다.

현대에 이르러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과거 ‘다중인격’으로 불렸던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설명하는 대명사 중 하나가 됐다. 더불어 많은 작품이 간접적이고 은유적인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국내에는 드라마 <두 얼굴의 사나이>(The Incredible Hulk·1977·사진)로 널리 알려진 마블 코믹스의 슈퍼영웅 <헐크>가 대표적 경우다. 실제로 2003년 극장용 대작으로 제작된 <헐크>를 연출한 이안 감독은 1931년에 만들어진 루벤 마물리안 감독의 영화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대척하던 두 인물의 몸과 정신이 바뀌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되는 구조로 진행되는 속칭 ‘스위치(Switch)’물 역시 넓은 범위에서 스티븐슨의 고전 영향력 안에서 파생된 장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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