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과 원칙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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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상명하복,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군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말이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쟁을 대비하는 군대이기에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분명해야 한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명하복과 절대복종은 다른 말이다. 군인이라고 생각 없이 주어진 모든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게 아니란 뜻이다. 민주공화국의 군인이 따라야 할 명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테두리에 속해야 한다. 지나가는 민간인을 죽이라는 상관의 지시도 명령이라 할 수 있는가? 헌법과 법률을 벗어난 명령은 명령이 아니라 위법행위다.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 계엄군에 가담한 고위급 장교들이 앞다투어 카메라 앞에 나타나 그날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눈물을 흘리며 부하들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양심 고백’이라 추켜세워주고, 공익제보자로 지정해 신변을 보호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어떤 맥락과 서사가 덧칠된다 해도 이들이 위법한 명령을 따른 내란범이라는 법적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형법은 내란의 수괴나 주모자는 물론, 단순 가담한 사람에게도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부과하고 있다. 국헌 문란의 목적을 가진 중대범죄에는 발도 들이지 말라는 엄포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상명하복이 아니다. 국군은 국민의 군대다. 제아무리 상관이며 통수권자라도 국민을 배신하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명령을 따라선 안 된다. 그 정도 판단도 할 줄 모르는 이에게는 부하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이끌 자격이 없다.”

그런데 계엄군에 가담한 지휘관급은 모두 자의로 부하들에게 출동을 지시했다. 누구에게 협박을 당한 것도, 납치돼 끌려간 것도 아니다. 그랬던 이들이 내란이 실패에 이르자 ‘나는 잘 몰랐다’며 당시의 상황을 국민 앞에 자백하고 있다. 물론 난파선에서 뛰어내리는 이들에게도 양심과 참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계획대로 국회를 점령하고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막았더라도 이들이 국민 앞에 눈물을 흘리며 진실을 말하고 있었을까?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개개의 판단과 사정이 참작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순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상명하복이 아니다. 국군은 국민의 군대다. 제아무리 상관이며 통수권자라도 국민을 배신하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명령을 따라선 안 된다. 그 정도 판단도 할 줄 모르는 이에겐 부하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이끌 자격이 없다. 어쩔 수 없었다는 궁색한 변명을 이해해주지 말자. 모두가 그렇게 살지 않으니까.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듯이 45년 전에도 용기 있는 군인들이 있었고, 지금도 부당한 수사외압에 따르지 않은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있다. 꽃다운 나이에 사살당하고, 고문당하고, 때로 항명했다며 법정에 서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진실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삶을 거는 이들도 분명 있다. 이런 사람들이 손쉬운 타협으로부터 사회의 원칙을 지켜낸다. 원칙이 흐트러지면 사회는 유지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선 것일지도 모른다. 지은 죄가 무엇이냐고 큰소리치는 윤석열에게서 의회 난입 사태를 초래한 트럼프가 겹쳐 보인다. 그는 단죄받지 않았고, 미국을 둘로 쪼개놨으며, 대통령이 되어 돌아왔다. 공들여 쌓아온 그 나라의 기준은 그렇게 트럼프로 대체됐다. 남의 일이 아니다. 윤석열과 부역자들의 책임을 낱낱이 가려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기준 역시 끝없이 퇴행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관용이 아니라 원칙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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