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고도의 통치행위”에 “유신시대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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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통치행위론 담화에 헌법학자 “반헌법적 발상” 이구동성

12월 1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담화를 TV로 보고 있다.

12월 1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담화를 TV로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12일 긴급담화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월 3일의 비상계엄이 “야당의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국회를 해산시키거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것은 아님은 자명하다”고도 주장했다. 내란 수괴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른 대통령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논리를 담화문 형식으로 밝힌 것이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그에게는 내란 혐의를 적용할 수 없을까. 학계와 법조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군경이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막은 사실이 명백한데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기만적”(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라는 것이다. 특히 ‘비상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일관되게 기각해 온 “유신헌법식 발상”(방승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치행위론, 기각된 지 오래

윤 대통령이 12월 12일 내세운 ‘통치행위론’은 12·3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이들이 여러 차례 반복해 온 논리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비상계엄이라는 건 고도의 통치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고도의 통치행위는) 사법적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게 정통적인 학설이다(지난 12월5일, 국회 행전안전위원회 현안질의)”라고 주장한 데 이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역시 “1997년 대법원 판례를 보면 비상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로 보고 있다(지난 12월11일, 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질의)”고 강변했다.

비상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여서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반헌법적 발상”이라는 게 헌법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방승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유신헌법에 긴급조치는 사법심사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나치헌법과도 유사한 그시절의 헌법 논리를 들고 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무리 고도의 통치 행위적 성격을 띠었다고 할지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역시 이날 성명을 통해 “통치행위가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배제된다는 주장은 현대 헌법질서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아주 낡은 논리”라면서 “박정희 시절 유신의 망령에 사로잡혀 이미 폐기된 판결을 들고 와 내란을 지속 선동하는 윤석열은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우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미 통치행위에 대해 수없이 사법심사를 해 왔으며 오래 전부터 이러한 판례가 확립돼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사범심사의 대상이 되느냐에 대해 따진 적이 있다. 1996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실시 긴급명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이 있었다. 정부는 “대통령의 긴급명령은 통치행위의 영역에 속하여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헌재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 심판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다만 금융실명제 긴급명령엔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윤상현 의원이 언급한 ‘1997년 대법원 판례’도 마찬가지다.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의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에 대해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한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면서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여진 경우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심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201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역시 과거 위헌성을 따지지 않았던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에 대한 판결을 변경해 위헌·무효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때 대법원은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하더라도 과도한 사법심사의 자제가 기본권을 보장하고 법치주의 이념을 구현하여야 할 법원의 책무를 태만히 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그 인정을 지극히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헌법이 있는 국가에선 어떤 국가권력도 헌법 틀 안에서만 인정이 되는 것”이라면서 “헌법상의 요건을 갖추지 않은 비상계엄을 가지고 통치행위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헛소리, 궤변”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밤 계엄령 선포 후 국회의사당에 진입한 계엄군의 작전 상황을 담은 국회 폐쇄회로(CCTV)영상을 국회사무처가 12월 5일 공개했다. 사진은 계엄군이 국회 직원들의 저지를 뚫고 국회의사당 2층 복도로 진입하는 모습. 국회사무처 제공

지난 3일 밤 계엄령 선포 후 국회의사당에 진입한 계엄군의 작전 상황을 담은 국회 폐쇄회로(CCTV)영상을 국회사무처가 12월 5일 공개했다. 사진은 계엄군이 국회 직원들의 저지를 뚫고 국회의사당 2층 복도로 진입하는 모습. 국회사무처 제공

■국회 마비 의도 명백했다

12일 담화에서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또 있다. 비상계엄은 “국헌을 망가뜨려려 한 것이 아니다” “국회를 해산시키거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그간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국회를 무력화할 의도가 없었다’는 변론 전략을 펼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윤 대통령에게 국회 마비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가 내란죄 유무죄를 가를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란죄의 성립요건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형법은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를 ‘국헌문란’ 중 하나로 보고 있다(형법 91조 2호). 그리고 이같은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하면 내란죄가 성립된다(형법 87조). 윤 대통령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할 목적이 없었다는 논리를 내세워 내란죄를 피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히 국회가 비상계엄을 155분만에 해제한 점을 적극 활용해 “2시간 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나”라고 따졌다.

국회 마비 의도가 없었다는 윤 대통령의 강변을 어떻게 봐야할까.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이 국회의 출입문을 막고 무장군인이 의사당에 들어가려 한 것,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았으니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 등을 볼 때 국회를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은 명백하다”면서 “대통령이 망상에 빠져 기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굵직한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 A씨는 “많은 사람들이 이번 담화를 보고 ‘대통령이 또 미쳤구나’ 하겠지만 대통령은 법률가다. 자기의 재판전략을 얘기한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A 변호사는 “목적 달성(국회 마비)을 못했기 때문에 목적이 애초 없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목적범’으로 분류되는 내란죄는 목적 달성이 실패했어도, 그런 목적(국회 마비)을 갖고 행동했다는 사실만 드러나도 처벌 가능하다”면서 “경찰이 국회 정문을 막은 행위,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와 체포·구금 지시, 무장군인이 헬기에서 내려 국회로 진입한 사실 등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이 국회를 마비시킬 목적으로 행동했음을 입증할 수 있고, 대통령 측 방어논리는 어렵지 않게 깰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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